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위 관리가 5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내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내용의 글을 익명으로 기고해 큰 파장이 인 가운데,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나는 아니다"라며 저마다 부인하고 나섰다. 백악관과 언론은 기고자가 누구인지 찾기 위해 혈안이 됐다. 일부 언론은 기고문 스타일을 분석해 펜스 부통령을 칼럼을 쓴 유력한 후보로 지목했다.

펜스 부통령의 대변인 재러드 아젠은 6일 오전 트위터를 통해 "펜스 부통령은 자신의 칼럼에는 이름을 밝힌다"며 "(익명 칼럼을 실은) 뉴욕타임스와 거짓되고 비논리적이며 배짱 없는 칼럼을 쓴 기고자는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했다. 아젠은 "부통령실은 그런 아마추어 같은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도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8월 16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과 함께 백악관 참모회의를 하고 있다.

인도를 방문 중인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기자들에게 "내가 쓴 게 아니다"라며 "트럼프 행정부를 끊임없이 공격해온 NYT가 그런 글을 실었다는 건은 놀랍지 않지만, 설령 진짜 현직 고위 관리가 그 글을 썼다 하더라도 NYT는 그런 불만투성이에 기만적인 파렴치한의 글을 싣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NYT가 트럼프 행정부의 기반을 흔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라고 했다.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의심을 부인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의 대변인 측은 므누신 장관이 해당 글을 썼는지 여부와 관련해 "웃을 일"이라고 답했다.

벤 카슨 주택도시개발부 장관과 알렉스 아자르 보건후생장관, 앤드루 휠러 환경보호청 청장대행 등 다른 내각 각료들도 서둘러 자신들은 기고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릭 페리 에너지장관은 기고자를 향해 "익명성 뒤에 숨어 미국의 대통령을 비방하는 것은 당신을 ‘알려지지 않은 영웅’으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며 "그것은 당신을 이 나라에 봉사할 자격이 없는 겁쟁이로 만든다"고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앞서 NYT는 익명의 행정부 고위 관리가 ‘나는 트럼프 행정부 내 저항 세력(레지스탕스)의 일원이다’라는 제목으로 쓴 기고문을 실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어젠다와 그가 내릴 최악의 결정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내각에서 수정헌법 25조에 근거해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도로 싫어하는 언론 매체 중 하나다. NYT가 익명 칼럼을 게재한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이란 평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9월 5일 백악관 이스트룸에 모인 취재진 앞에서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익명 칼럼을 비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칼럼이 공개된 지 1시간 30분도 안 돼 칼럼 내용과 기고자, NYT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백악관 이스트룸에 모인 취재진 앞에서 이 칼럼을 ‘비겁하다’고 비판한 데 이어, 트위터에도 "반역(TREASON)?"이라고 물은 뒤 "‘행정부 고위 관리’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하긴 하나, 아니면 망해가는 NYT가 내세운 또 다른 거짓 취재원인가"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배짱 없는 이 익명의 인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NYT는 국가안보를 위해 그를 정부에 당장 넘겨야 한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틑날에도 칼럼과 NYT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이어갔다. 그는 "딥 스테이트와 좌파(The Deep State and the Left), 그들의 매개체, 가짜 뉴스 미디어가 미쳐가고 있다"며 "NYT의 탐사 보도 ‘기자들’은 누가 익명의 기고자인지 내부 조사를 할 것인가"라고 비꼬았다. ‘딥 스테이트’는 ‘국가 안의 국가’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무력화시키려는 음모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도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칼럼 기고자의 신원 공개를 촉구했다. 멜라니아는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행동을 비난할 정도로 대담한 인물이라면, 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말에 떳떳해야 할 책임이 있다. (공격을 받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기고자 당신은 이 나라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비겁한 행동으로 이 나라를 파괴하고 있다"고 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익명의 겁쟁이가 누군지 묻는 언론의 광적인 집착은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섬기며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 수 천명의 위대한 미국인들의 평판을 무모하게 더럽히고 있다"며 NYT에서 칼럼을 담당하는 오피니언 데스크의 회사 내선번호를 말미에 적었다. 샌더스 대변인은 "그들(NYT)만이 유일하게 이런 기만적인 행위에 가담했다"고 했다.

영국 BBC는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익명 칼럼과 미 행정부가 그동안 발표한 성명들을 비교해 익명의 기고자가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라고 추정했다.

백악관은 칼럼 기고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냥’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는 "대통령 측근들은 최소한 기고자가 일하는 부서라도 알아내기 위해 기고문의 언어 패턴을 분석하는 등 작전에 들어갔다"라고 전했다. CNN은 기고자 후보로 펜스 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매티스 국방장관, 멜라니아 여사 등 모두 13명을 꼽았다.

현재까지는 펜스 부통령이 칼럼을 기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칼럼에 등장한 북극성이란 뜻의 ‘lodestar(로드스타)’란 단어 때문이다. 이 단어는 펜스 부통령이 연설 때 여러 차례 썼다.

그동안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발표한 성명들을 비교한 결과도 펜스 부통령이 칼럼을 썼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영국 BBC는 칼럼에 쓰인 문장의 길이, 즉 한 문장에 쓰인 단어의 수가 여타 정부 문서보다 확연히 적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한 관리는 다른 이들보다 항상 발언과 연설이 짧다. 때로는 상당히 짧다"며 "그의 이름은 마이크 펜스"라고 했다.

BBC는 칼럼 기고자가 능동태가 아닌 수동태를 즐겨 쓴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BBC는 "정부 성명은 매우 드물게 수동적인 목소리를 사용하고, 대개 능동적인 목소리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백악관 성명과 비교하면 칼럼에 쓰인 수동형 문장의 수는 놀라울 정도다. 단, 펜스 부통령의 성명은 제외하고 말이다"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