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을 땄지만, 팬들이 느낀 실망감은 당연한 것 같아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프로야구 넥센의 이정후(20·사진)는 최근 막을 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되돌아보며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화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아쉽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한국 대표팀은 아시안게임 조별리그에서 대부분 실업팀 선수로 꾸려진 대만에 1대2로 지며 팬들을 실망시켰다. 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아시안게임 3연속 우승에 성공했지만, 일부 선수가 병역 특례 혜택을 노리고 입대를 미뤘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이정후는 지난 6월 발표된 대표팀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게 된 두산 박건우 대신 대표팀 외야수 자리를 차지했다. 뒤늦게 합류했지만 아시안게임에선 제 몫을 다했다. 한국이 치른 6경기에 모두 1번 타자로 선발 출장해 타율 0.417(24타수 10안타), 2홈런, 7타점으로 활약했다.

이정후는 "팬들이 없으면 선수들은 공놀이하는 사람들일 뿐"이라며 "야구장에서 모든 걸 쏟아부어 팬들의 마음을 돌리겠다"고 했다. 그는 귀국 다음 날인 4일 SK와의 문학 원정경기에서 4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으로 팀의 7대3 승리를 이끌었다.

작년 신인왕인 이정후는 2년 차인 이번 시즌 85경기에 출전해 타율 1위(0.379), 출루율 2위(0.433), 득점권 타율 3위(0.392)를 달린다. 지난 5월 왼쪽 종아리, 6월 왼쪽 어깨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7월 중순 복귀한 이후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후반기 26경기 타율은 0.482(54안타, 18타점)다.

아버지인 이종범(48) 대표팀 코치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이정후는 "연이은 부상으로 조급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가 '잘하고 있으니까 급할 것 없다'고 기운을 북돋워줬다"고 했다. 어머니 정정민(47)씨는 부상으로 체력이 떨어질까봐 평소 아들이 좋아하는 돼지고기 김치찜을 만들어 주며 응원했다.

이정후는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부자(父子) 타격왕'에 도전한다. 지난 1993년 해태(현 KIA)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이종범은 프로 2년 차였던 1994년 타율 0.393(124경기 196안타)으로 타격왕을 차지했다. 이정후는 가장 존경하는 선수로 아버지를 꼽는다. "아버지가 선수 시절 땐 팬들이 '이종범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죠. 저도 아버지처럼 팬들에게 기대감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