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낳고 일을 그만뒀어요. 저뿐 아니에요. 저는 대원외고, 연세대 경영학과, 의학전문대학원 나왔거든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나와서 전문직 하던 친구들도 열에 아홉이 커리어 포기하고 집에서 애 키워요. 누가 결혼해서 애 낳고 싶겠어요?"

의사 문지희(가명·34)씨 이야기다. 문씨는 2012년 같은 직업인 네 살 연상 남편과 결혼해 다섯 살, 두 살 아이를 뒀다. 문씨가 첫째 출산 3개월 뒤 복직하자, 시부모와 친정부모가 번갈아 아이를 봤다. 하지만 둘째를 낳자 양가 부모도 손을 들었다. 결국 문씨가 사표를 냈다. "내가 아무리 의사라도, 지금 한국은 믿고 맡길 인프라가 부족해 가족 중 누군가가 24시간 아이에게 붙어야 하는 상황이고, 그건 결국 엄마더라"고 했다.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로 떨어지는 '0.9쇼크'가 왔다. 취재팀은 저소득 비정규직부터 고소득 전문직까지 다양한 계층을 만나 속내를 물었다. 여론조사회사 메트릭스에 의뢰해 소득과 계층에 따라 7개 집단으로 나눠 심층 면접 인터뷰도 진행했다. 결론은 '일·집·보육' 삼중고였다.

◇일하고 싶다

취재에 응한 기혼 여성들은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일하며 아이를 키울지, 그만 포기할지 매 순간 고뇌한다"고 했다. 미혼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왜 꼭 해야 하느냐"고 회의했다.

전업주부 박혜영(가명·36)씨는 잠깐 쉬다 아이 낳고 다시 일할 생각이었다. 아이를 가진 순간, 복직은 요원해졌다. "아이가 돌 지난 뒤 복직하려 했지만, 어린이집이 늦게까지 봐주지 않을뿐더러 양가 부모님도 '도와주기 어렵다'고 했어요."

미혼 여성 노희영(가명·32·중소기업 직원)씨는 "남녀가 똑같은 상황에서 결혼하면 여자의 희생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고 했다. "커리어도 갖고 싶고 돈도 계속 벌고 싶은데 '경단녀'(경력이 단절된 여성)가 되는 상실감을 남편이나 아이가 상쇄해줄 것 같지 않아요."

◇집이 남자를 울린다

미혼 여성 박세정(가명·34·공공기관 비정규직)씨는 "그래도 누군가와 결혼한다면, 60세까지 최소한 월 500만원은 벌 수 있는 상대가 좋다"고 했다. 중소기업 직원 강영진(가명·32)씨는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빌라는 싫다"고 했다.

또래 미혼 남성들에겐 이런 말 하나하나가 좌절감을 안겼다. 외국어 강사 정영훈(가명·35)씨는 "8~9년 일하며 열심히 모았지만 내가 정한 목표의 50%밖에 못 모았다"고 했다. 공공기관 직원 이진성(가명·31)씨는 "직장 생활 4년 동안 학자금 대출 갚고 현금 3000만원을 모았지만 전셋집이라도 마련하려면 6년은 더 모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찍 결혼한 선배들이 다들 쪼들리며 살다 아이가 생기면 더 힘들어하더라"고 했다.

◇믿고 맡길 곳이 없다

보육 현실은 더했다. 중견기업 직원 김희선(가명·35)씨는 맞벌이하면서 아이 낳은 뒤, 직장 근처 어린이집을 간신히 찾아냈다. 집 주변 어린이집에서 20군데 넘게 퇴짜맞은 뒤였다.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됐다. 수도권 집에서 오전 6시 40분에 아이를 깨워 카시트에 태웠다. 1시간 10분 걸려 서초동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할 때 같은 시간을 들여 집으로 왔다. 차 속에서 아이가 멀미도 하고 배앓이도 했다. "차를 세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지금 대한민국은 애 낳는 게 국가는 이익일지 몰라도 개개인에겐 고통인 나라"라면서 "아이를 낳는 순간 돈 들 일이 닥쳐오고, 안 낳기로 결심해야 그나마 지금처럼 살 수 있다"고 했다. 이 딜레마가 '0.9쇼크'를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