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는 시대, 손바닥에 딱 맞는 라이브까지 등장했다. 스마트폰 화면 비율에 맞춘 무대를 만들어 음악을 연주한다. 휴대폰이 세로 모양이라는 데 착안해 영상을 세로로 편집한 '세로 라이브'가 인기를 끌더니, 아예 라이브를 16대9 비율에 맞춘 것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옥상달빛, 세카이노 오와리, 아도이, 아유차일디쉬, 소수빈과 치즈, 오르내림.

CJ문화재단이 내놓고 있는 '아지트 라이브'는 모두 작은 박스 안에서 찍은 듯한 영상이다. 가로 3.2m, 세로 1.8m, 깊이 2.4m짜리 박스 모양 무대에서 뮤지션들이 공연한다. 이 박스는 대부분의 스마트폰 화면과 같은 16대9 비율로 만들어졌다. 박스 내부를 뮤지션들이 원하는 분위기로 매번 다르게 꾸민다는 게 이 라이브의 또 다른 특징이다. 솔로 뮤지션이 마이크 앞에서 통기타를 연주할 때는 그저 작은 무대처럼 보인다. 박스 내부를 정글처럼 꾸며달라고 한 밴드는 5인조인 데다 악기들까지 갖춰 더없이 비좁다. 그만큼 신선한 무대 연출이기도 하다.

한 평(3.3㎡)도 되지 않는 박스는 카메라가 비추는 전면을 제외하고 모두 막혀 있다. 모든 벽면에는 특수 페인트를 칠해 조명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거나 영상을 비춰 매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 박스의 골조는 철재이며 각 벽면은 목재이고 재료를 분해·조립할 수 있어 어디로든 무대를 옮길 수도 있다.

스마트폰 화면 비율에 맞춘 아지트 라이브의 공연 장면들. 음향·조명·촬영 등 스태프 20여 명이 참여한다.

이 공연을 기획한 '스페이스 오디티' 김홍기 대표는 "공연명이 '아지트'라는 데 착안해 뮤지션들의 아지트, 즉 방이나 연습실 같은 분위기를 생각해 냈다"며 "이 공간을 뮤지션들이 어떤 음악과 장치들로 꾸밀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공연"이라고 말했다. 모든 연출은 뮤지션들 의견을 반영해 기획한다. 10센치의 신곡 '매트리스'는 이불 속 연인 모습을 담은 가사에 맞춰 베개 솜이 흩날리는 침실로 꾸몄고, 밴드 아도이의 노래 '그레이스'는 "노래를 들으면 여름밤 정글이 떠오른다고 해 뮤직비디오도 숲속에서 찍으려 했다"는 말을 듣고 마치 정글 속 공연처럼 연출했다.

현재 유튜브에는 아지트 라이브 15편이 올라와 있다. 촬영·녹음을 끝내고 후반 작업 중인 라이브가 8편가량 된다. 출연진은 대개 CJ문화재단이 지난 2010년부터 '튠업 아티스트'로 선발해 온 국내 인디 뮤지션들이지만, 일본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 영국 뮤지션 빌리 아일리시처럼 공연차 내한했다가 섭외되는 팀들도 있다. 한 곡의 라이브 영상은 6분 이내. 그러나 실제 촬영·녹음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대개 하루 2~3팀을 섭외해 각각 2곡씩 촬영하는데 꼬박 2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박스 내부를 기획한 대로 꾸미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 지금까지 모든 촬영은 서울 마포구 신정동의 CJ아지트 공연장에서 이뤄졌다.

영상 주인공들이 대개 인디 뮤지션인데도 평균 조회 수가 30만이 넘는다. 싱어송라이터 소수빈의 '자꾸만, 너'는 세련된 라이브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조회 수가 64만건까지 올라갔다. 아지트 라이브를 찍었던 내한 아티스트들이 소셜미디어에 영상을 올리면서 외국으로도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김홍기 대표는 "미국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를 비롯해 모바일에 최적화된 라이브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이 작은 박스를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큰 무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