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일 중국 산둥성의 항구도시 르자오(日照)에서 동쪽으로 240㎞ 떨어진 서해(중국에선 황해) 해상. 이종격투기 경기장 옥타곤처럼 생긴 팔각의 대형 구조물이 바닷속으로 내려졌다. 팔면 합계 180m, 높이 35m, 국제 규격 수영장 40개와 맞먹는 부피의 이 구조물은 중국 최초이자 세계 최대의 심해 바다농장 '선란(深藍·deep blue)-1호'였다.
다음 날인 7월 3일 육지에서 배로 날라온 연어 치어 12만 마리가 대형 파이프를 통해 선란-1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연어들을 선란-1호로 모두 투입하는 데만 꼬박 12시간이 걸렸다. 평균 500g인 연어들은 선란-1호에서 8~10개월을 지내며 상품화가 가능한 5㎏짜리로 성장하게 된다.
선란-1호 운영사인 완쩌펑(萬澤豊)수산의 리저밍 부사장은 "선란-1호에서 연간 1500t의 연어를 생산할 계획"이라며 "내년 춘제(중국의 설)에는 '서해산(産) 국산 연어'가 중국인들의 식탁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완쩌펑 측은 선란-1호 속 연어 숫자를 앞으로 40만 마리까지 늘리게 된다.
냉수 어종인 연어 양식이 불가능했던 난류(暖流) 국가 중국이 연어를 바다에서 양식하는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 선란-1호로 심해 양식에 첫발을 내디딘 중국은 고급 수입 어종인 연어를 자급자족한다는 꿈같은 목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선란-1호가 성공해 선란-2호, 선란-3호가 잇따라 등장한다면 노르웨이·칠레·영국·미국 등 극지 바다와 가까운 소수 국가가 주름잡아온 세계 연어 생산 시장은 일대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해 바닷속 냉수대 1%만 활용해도 연어 양식 가치 16조원
냉수 어종인 연어 수십만 마리를 어떻게 한여름 서해에서 양식한다는 것일까. 비밀은 서해 냉수대(冷水帶)에 있다. 중국해양대 연구진에 따르면, 따뜻한 바다로만 보이는 서해에는 면적 13만km², 부피 5000억m³에 이르는 거대한 냉수대가 존재한다. 이 냉수대는 한여름에도 수온이 12~16℃로, 연어가 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서해 냉수대 가운데 단 1%, 즉 50억m³만 양식에 활용해도 중국으로선 무려 1000억위안(약 16조3000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게 중국해양대 연구진의 분석이다.
문제는 이 냉수대가 해안에서 수백㎞ 떨어진 바다 밑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태풍 같은 악천후와 상어 떼가 수시로 덮치는 상황에서 전체 연어의 90%를 탈 없이 길러내야 한다. 선란-1호는 잠수함 같은 부력 조절 장치를 통해 수심 4m에서 50m까지를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다. 최적의 수온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이지만, 태풍이 다가올 때 물속 깊숙이 가라앉아 피해를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100t짜리 네 개의 닻은 안전판 역할을 한다. 첨단 복합재료 그물망은 상어의 공격에도 찢기지 않는다. 먹이는 물보다 비중이 큰 특수 사료를 쓴다. 사료로 인한 해상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육지와 연결된 원격 제어 시스템으로 산소 포화도와 연어들의 활동량을 모니터한다.
◇연어 소비 폭증…中, 매년 수만t 수입
경제 발전으로 생활이 풍족해지면서 중국인들의 연어 소비도 급증하고 있다. 2011년 2만9000t이었던 중국의 연어 소비량은 최근 8만~10만t 수준으로 치솟았다. 연어 소비가 폭증하면서, 중국은 연간 4만t이 넘는 연어를 노르웨이와 칠레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다.
칭하이(靑海)성, 랴오닝(遼寧)성 등 고원이나 북방지역 호수·강 등에서 양식된 중국산 연어들이 나머지 공급 부족분을 메워왔다. 그런데 최근 중국 국영 CCTV는 "중국 내에서 팔리는 연어의 3분의 1이 칭하이 호에서 양식된 무지개송어"이며 "값싼 중국산 무지개송어가 외국산 연어로 둔갑해 비싼 가격에 팔려왔다"고 폭로했다. 소비자들은 발칵 뒤집혔다. "무지개송어도 연어로 분류된다"는 당국의 설명에도, 소비자들은 해수가 아닌 내륙 호수에서 양식된 중국산 무지개송어에 대해 기생충과 항생제 오염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내륙 담수의 냉수 자원이나 연안 해수를 사용해온 중국 내 연어 양식은 실제로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다. 밀집 양식이라는 한계로 인해 세균과 병해에 노출될 우려가 크고, 결국 외국산 연어에 비해 질이 떨어질 위험이 큰 것이다.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서해에서의 연어 심해 양식은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해 연어를 즐기는 중국 소비자들의 불만과 불신을 근본적으로 잠재울 수 있는 대안인 셈이다.
◇남중국해에도 초대형 심해 양식장 3곳 건설 준비
오는 2030년이 되면 세계인들이 먹는 수산물의 62%가 양식을 통해 공급될 것이라는 게 세계은행의 추산이다. 잡는 어업만으로는 폭발하는 수산물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이미 전 세계 어느 국가도 넘볼 수 없는 양식 대국이다. 2016년 5140만t의 양식 수산물을 생산, 전 세계 수산물 양식의 60%를 차지했다. 중국은 양식 사료 수입 면에서도 전 세계 수입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국가 양식 시범지역 계획 9개년 계획을 발표, 전국에 178개 시범 양식장을 건설하기로 하는 등 양식산업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서해 말고도 남중국해에서도 심해 양식장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남중국해 해역에 선란-1호를 능가하는 초대형 심해 양식장 3곳을 짓기 위해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하이난(海南)성을 주축으로 국영 조선소와 베이징대 등이 참여하는 대규모 컨소시엄까지 만들었다. 9억5500만달러(약 1조670억원) 가 투입될 남중국해 심해 양식장은 지름이 축구장 길이와 같은 120m에, 높이는 22층 빌딩과 같은 75m에 이른다. 한 곳당 6000t의 생선을 생산할 수 있다. 선란-1호와 같은 자체 수심 조절 기능과 첨단의 원격 제어 기능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국들과도 양식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중국을 국제중재 법정으로 끌고 간 필리핀과도 두테르테 현 대통령 집권 이후 남중국해에서의 수산물 양식 노하우 등을 지원하는 등 밀착하고 있다. 일본의 외교 전문지 디플로맷은 "중국의 이 같은 행보 뒤에는 남획으로 인한 남중국해 어자원 고갈을 막아 이 해역에서의 첨예한 어업 분쟁을 완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