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5일 평양에 특사단을 보낸다. 대북 특사는 9월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일정과 남북 관계 발전, 한반도 비핵화 등을 협의할 것이라고 한다. 당초 남북 정상회담은 8월 말로 예정됐던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그리고 시진핑 중국 주석의 9월 9일 북한 건국 70년 행사 참석에 이어 열리게 일정이 맞춰졌다. 그래서 9월 말 유엔 총회를 전후해 남북과 미·중 4개국의 종전선언을 이끌어내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정부 구상이었다. 그러나 폼페이오 장관 방북 직전에 북 김영철이 폼페이오에게 '확실하게 줄 선물이 없으면 오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내자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의 방북을 취소시켰다. 또 트럼프가 "중국이 북 비핵화를 돕지 않는다"고 공개 비판하고 나서면서 시진핑 주석의 방북이 북한이 기대했던 모양대로 이뤄질지도 불투명해졌다. 미국은 북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선행 조치가 이뤄져야 미·북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때까지 강한 대북 압박 기조는 유지된다.

이렇게 당초 예상과 크게 다르게 변한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 역시 달라진 여건에 맞게 내용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궤도를 이탈한 비핵화 협상을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남북 관계 발전은 미·북 관계 진전의 부수 효과가 아니다"라고 했다. 말은 그럴 듯하지만 현실에선 미·북 북핵 협상이 진전되지 않으면 남북 관계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국제사회 대북 제재망에 한국이란 구멍이 뚫리면 북이 뭣 하러 비핵화를 하겠나.

지금 한·미 간에는 미묘하고 위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정부가 8월 말까지 강행하려 했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개소가 늦춰지고 남과 북이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열차를 시범운행하려던 계획이 주한미군 사령관의 반대로 무산됐다. 한·미 간에 가볍게 볼 수 없는 징조들이다. 지금 한반도에서 그 무엇도 비핵화를 비켜갈 수 없다. 비켜가려는 시도가 있다면 국민을 속이고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다. 북핵 인질을 자초하는 일이다. 대북 특사 파견과 그에 이은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은이 생각을 고쳐먹도록 설득하는 데 모든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