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보다 9.7% 늘어난 470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도 늘린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 때 수준의 초대형 예산이다. 물가를 감안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4.4%)의 2배가 넘는다. 여권이 '상상을 초월하는' 예산 증액을 주장한 것이 현실이 됐다.

정부가 세금을 동원해 경기 진작에 나서는 것은 주요한 정책 수단이다. 경제성장률이 2%대로 꺾이고 일자리 부족이 심각해진 지금 세금 지출을 늘려 선제적으로 경기 대응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 문제는 적절한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손쉬운 세금 퍼붓기로 해결하려는 세금 중독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규제 혁신이나 노동 개혁, 기업 활동 활성화 같은 근본 대책은 지지부진하거나 역주행하면서 세금부터 쓰겠다고 한다. 국민 세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사라지고 있다.

정부 출범 1년 반 동안 총 54조원의 일자리 예산을 썼거나 쓸 예정이다. 천문학적 돈을 퍼부었지만 지난 7월 일자리 증가 폭은 1년 전 대비 5000개에 그쳤다. 54조원이 모래 위에 뿌린 물처럼 사라졌지만 내년엔 일자리 예산을 22% 더 늘리겠다고 한다. 내용을 보면 납득할 수 없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올해도 경찰·군인·교사 등의 공무원을 2만7000명 증원했다. 경찰 증원은 계속돼왔는데 더 필요한지 검토라도 있었나. 학생 수가 충격적 수준으로 줄어드는데 거꾸로 교사를 늘려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그래도 내년에 공무원 3만6000명을 더 뽑겠다는데 5년 임기 동안 정말 17만명을 증원하면 그 세금 부담을 국민이 어찌 감당하나. 30년간 350조원이 필요하다. 다른 일자리도 대부분 임시직으로 사실상 세금 살포와 같다. 일자리 예산이라며 음식점 주인에게 세금으로 돈을 준다. 나중에 끊을 수 있나.

정부 5년간 누적 적자는 179조원에 달해 이명박(99조원)·박근혜 정부(111조원)를 크게 뛰어넘게 된다. 건전 재정을 자랑하던 우리가 만성적 적자 구조로 전락했고 더 악화되고 있다. 지금은 세금이 잘 걷히지만 경기 부진의 영향이 세수에 미치게 되면 적자는 더 커진다. 국가 채무도 5년 동안 34% 늘어 843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GDP의 40% 수준이지만 채무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 경제는 침체인데 재정까지 만성 적자면 이중(二重) 리스크에 빠진다.

정부 예산은 한정된 국가 자원에서 민간이 쓸 돈을 정부가 가져다 대신 쓰는 것이다. 정부의 돈 씀씀이는 민간보다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470조 국민 세금을 걷고 지출하는 데서 무거운 책임감이나 엄중함이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