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수도 캔버라에서는 최근 캔버라국제공항을 상대로 한 '무기 광고 금지'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록히드 마틴과 레이시온, 영국의 BAE시스템스 같은 세계 최대 무기·방산 업체들의 광고가 공항 곳곳을 도배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나라의 관문답게, 잠수함이 등장하는 무기 광고들 대신 손님을 따듯하게 맞이하는 메시지가 담긴 광고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세계 굴지 군수 기업들이 이처럼 호주로 몰려들고 있는 건 호주 정부의 야심 찬 군수 강국화 계획 때문이다. 호주는 앞으로 10년간 1470억달러(약 164조원)를 쏟아부어 군비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 "전시(戰時)가 아닌 평시 국방예산으로는 호주 역사상 최대 규모"라며 "아시아 지역에서 가열되고 있는 군비 경쟁의 선명한 한 단면"이라고 전했다.

군비 증강 대열에는 아시아 2위와 3위의 군사 대국인 인도와 일본도 가세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지난 25일 해군 헬리콥터 111대 등이 포함된 무기 구입 예산 65억달러(약 7조2380억원)를 승인했다. 1500대의 신형 포와 24대의 대잠헬기 도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추진 중인 2500억달러(약 278조원) 규모 군(軍) 현대화 정책의 일환이다. 중국과 2000㎞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 정부는 올해 사상 최대 국방 예산을 편성했다.

이달 내로 결정될 2019년도 일본 방위 예산은 사상 최고액인 5조3000억엔(약 53조원) 규모에 육박할 전망이다. 일본 방위성은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겨냥한 지상배치형 미사일 요격시스템과 세계 최강 스텔스 전투기 F-35A를 도입할 계획이다. FT는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군비 경쟁의 진원지는 중국"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두려움과 불확실성이 역내 군비 확장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파인 호주 국방장관도 "우리는 현재 지난 수십년 동안 가장 불안정한 시대에 살고 있다"며 중국에 의한 남중국해 군사기지화 등을 군비 강화의 핵심 이유로 꼽았다.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는 "지난 5년간 전 세계 10대 무기 수입국 중 4개국이 중국을 비롯해 중국과 국경을 접한 아시아 국가"라고 했다. 중국의 군사 굴기가 주변국 및 아시아 국가들의 군비 경쟁을 촉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끊임없이 최첨단 무기 개발 등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다. 27일 중국 관영 과기일보는 중국 연구진이 세계 최초의 '전자기 로켓'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존 로켓의 추진 동력인 폭약에 더해 전자기력을 이용해 추진력을 극대화하는 미사일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군은 이 전자기 로켓을 인도와 국경 분쟁을 벌였던 티베트 고원 지대에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근육질로 변해가면서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군비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호주 국방백서와 영국 군사정보업체 IHS 제인스에 따르면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국방비 규모는 올해 약 4500억달러(약 501조원)로 2000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그중 2000억달러 이상이 중국의 국방비였다. IHS 제인스는 현재 미국의 65% 수준인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국방비가 2029년에는 미국·캐나다를 합친 북미 지역을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존의 동맹구도를 뒤흔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외교 방식도 아시아 각국의 군비 증강에 기름을 붓고 있다. 방위비를 충분히 내지 않는다고 동맹국을 공격하고 러시아에는 환심을 사려는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일본과 같은 나라조차 국방비 지출을 늘리고 있다는 얘기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시몬 웨즈먼 선임연구원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 준비를 하라'는 옛말처럼 아시아 지역에서 모두가 군비 경쟁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