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봉과 방수현, 김동문, 라경민 그리고 이용대까지. 이들이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고 세계 배드민턴계를 주름잡던 시절이 있었다. 한때 세계에서 손꼽히던 배드민턴 '강국' 한국이 '자카르타 쇼크'에 빠졌다.

한국 남자 단식의 간판 손완호(30·세계 랭킹 5위)는 26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8강전(GBK 이스토라)에서 일본의 니시모토 겐타(10위)에게 0대2로 완패했다. 같은 시각 열린 남자 복식 8강에선 최솔규-강민혁 조가 리저훼이-리양(대만)에 무릎을 꿇었다.

배드민턴 남자 복식 대표 강민혁(19·왼쪽)이 26일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경기장에서 열린 8강전에서 공격하고 있다. 최솔규(23)와 강민혁은 이날 세계 랭킹 15위인 대만의 리저훼이, 리양에게 0대2로 지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하루 전인 25일 두 차례 '한·일전'에서도 모두 졌다. 여자 복식의 간판 이소희-신승찬 조(세계 랭킹 8위)는 랭킹 1위인 일본의 후쿠시마 유키-히로타 사야카 조에 0대2로 완패했다. 또 다른 여자 복식 8강에선 일본의 마쓰토모 미사키-다카하시 아야카 조를 상대한 김혜린-공희용 조가 0대2로 졌다. 2세트 경기 시간은 불과 29분. 단 한 차례도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기대를 모았던 여자 단식 성지현(세계 랭킹 9위)도 16강전에서 태국 선수에게 무릎을 꿇었다. 앞서 한국은 남녀 단체전에서도 모두 8강 탈락했다. 한국 배드민턴이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노메달에 그친 건 1978 방콕 대회 이후 40년 만이었다. 개인전(남녀 단·복식)에서도 모두 중도하차한 한국은 40년 만에 아시안게임 '노메달'이란 참혹한 결과를 안고 짐을 싸게 됐다.

배드민턴은 전통적으로 한국의 '메달밭' 중 하나였다.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자리 잡은 1962년 이후 배드민턴에서 통산 66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1994 히로시마 대회 땐 금메달만 4개 획득(총 8개)하며 배드민턴 종합 1위에 올랐다.

하지만 2016 리우 올림픽 이후 이용대(30)와 유연성(32), 고성현(31), 김사랑(29) 등 대표팀 주축 멤버가 태극 마크를 내려놓으며 뜻하지 않은 세대교체가 시작됐다.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를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렸지만, 경험과 오랜 호흡(복식)이 중요한 종목 특성상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달 초 열린 세계선수권(중국 난징)에서도 메달을 걸지 못했다. 강경진 대표팀 감독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2020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에 밀렸던 일본 배드민턴은 자카르타에서 사상 최고 성적을 쓰고 있다. 2010·2014 대회에서 각각 메달 1, 2개에 그쳤던 일본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이미 단체전 메달 2개(금1, 동1)를 거머쥐었다. 2개 팀이 나란히 4강에 오른 여자 복식에서도 메달 2개를 확보했다. 박주봉(54) 감독이 이끄는 일본 대표팀은 적극적 재정 지원, 엄격한 합숙 훈련 등을 통해 세계 정상권으로 발돋움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 일본과의 5차례 맞대결(남자 단식·단체전 8강, 여자 복식 8강 2경기, 혼합 복식 32강)에서 모두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