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前 한국경총 회장

지난달 취업자 수가 작년 같은 달 대비 5000명 증가에 그쳤다. 대부분 정부 재정으로 뒷받침되는 일자리인 사회복지 14만9000명, 공공 부문 6만6000명 증가를 포함한 것이니 사실상 대폭 감소다. 대통령이 경제부총리 등에게 "직을 걸라"고 하고, 경제부총리는 "책임지겠다"고 했다는데, 그 책임을 오직 일자리 창출로 져 주기 바란다.

왜 이렇게까지 성과가 부진한지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치열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이 '재난 수준의 고용 부진'에 대해 변명하는 일부터 그만두자. 날씨, 인구 구조 변화, 전(前) 정부의 정책 때문이라는 변명을 하면서야 장관들에게 직(職)을 거는 결연함을 요구해도 어디 영(令)이 서겠는가?

문제는 일자리 만드는 일에 총력을 쏟기보다 일자리를 줄일 수 있는 일을 더 서둘러, 더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과 같은 이미 있는 일자리의 질(質)을 높이는 일들 말이다. '값이 올라가면 수요가 준다'는 철칙은 노동시장에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부터 '일자리의 값'이 급등한 결과, 광공업·도소매·음식숙박업 등에서 21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노동의 값을 올리면 저소득층의 소비 지출이 늘고 내수 진작, 경기 활성화로 이어져 다시 노동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는 '소득 주도의 성장'이 맞는 말이라고 치자. 그러나 고용 감소 효과는 즉각 나타나는 반면, 고용 증가 효과는 너무 늦게 드러난다는 게 확인되고 있다.

예를 들어 원전 폐쇄가 좋은 일이라고 해도, 일자리 관점에서 보면, 국제 경쟁력 있는 산업의 확실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당장인데, 풍력·태양열 발전에서 경쟁력을 구축해 대체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언제 얼마나 가능할지 모른다. 우리보다 200배 넘게 많은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중국을 이길 풍력발전 산업을 우리가 과연 만들 수 있겠는가?

경제원칙 제1조는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이다. '더 중요한 가치 실현을 위해 일자리쯤은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진 장관들이 즐비하다면 일자리 창출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조금이라도 일자리를 줄일 가능성이 있는 정책들은 일자리 사정이 호전된 후로 보류하는 정도의 대가는 치러야 일자리가 늘 수 있다.

그러려면 범정부 차원에서 '일자리 영향평가제'를 제대로 해야 한다. 특히 '일자리의 질 높이기'에만 열심인 고용노동부가 아니라 일자리위원회에 총괄 컨트롤타워 기능을 맡기고, 수출이 지상 과제였던 시절 수출진흥 확대회의처럼 매월 한 번씩 대통령이 직접 일자리 점검 회의를 주재하면 좋겠다. 매월 고용통계에 부처별 일자리 증감을 발표하고, 모든 장관이 소관 분야의 고용 증가에 직을 걸게 하자.

일자리 증가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수차례 입증된 소위 '일자리 예산'은 이제 그만 늘리자. 돈이 있다면, 수익성이 떨어져서 민간 기업들이 하기 어렵거나 민간이 하겠다고 해도 허용하지 못하는 대형 프로젝트들, 예컨대 영리형 병원이나 스마트 팜, 케이블카 같은, 그 자체로도 일자리를 만들고 전·후방(前後方) 유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투자 사업에 써야 할 일이다. '생활 SOC'라는 이름을 붙여도 건설 사업의 일자리는 완공과 동시에 없어진다. 지속성이 없으니 너무 의존하지 않는 게 낫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한 괜찮은' 일자리는 오직 투자에 의해서만 만들어지고 민간 투자는 오직 수익이 기대될 때만 일어난다. 대통령이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 혁파를 촉구한 것을 보면 정부도 이를 알고는 있는 듯하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통받는 자영업자 지원이나 서민 생활 안정을 명분으로 기업의 수익성을 훼손하는 일들을 다반사로 해서는 효과가 반감될 것이다.

정말 걱정인 것은 규제가 혁파돼도 투자와 일자리 모두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가격 규제, 노동 비용 증가 등으로 기업의 수익성이 많이 훼손됐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미 뒤떨어지고 있어서다. 즉 기업이 과감한 투자를 하기에 불확실성이 너무 높아진 것이다.

지금 기업의 수익성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주는 일이다.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별화처럼 기업이 원하는 것을 당장 해주기 어렵다면 미취업자·실업자와 지방정부가 절실히 원하는 최저임금의 지역별·연령별 차등화라도 가능하게 해 주면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아무것도 안 바꾸면 아무것도 안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