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가에게 필요한 지성과 외교술, 끈기를 갖춘 인물.’

미국 국무부의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된 미 자동차 회사 포드의 스티븐 비건(55) 국제 대(對)정부 담당 부회장에 대한 미 안보 전문가들의 평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3일(현지 시각) 다음 주 4차 방북 계획을 발표하면서 비건 부회장을 대북정책 특별대표에 임명했다고 밝혔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자리는 올해 2월 조셉 윤 전 대표가 국무부를 떠난 후 공석이었다.

자동차 회사 고위 임원이 어떻게 폼페이오 장관의 북한 비핵화 협상을 보좌할 핵심 역할을 맡은 걸까. 비건은 정치·민간 부문을 막론하고 외교·안보 분야 관련 경험이 풍부하다. 그는 미 상·하원 외교위원회를 거쳐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최고운영책임자를 지냈고, 존 매캐인 전 공화당 대선 후보의 외교 자문역을 맡았다.

스티븐 비건 미 포드자동차 부회장이 2018년 8월 23일 미 국무부 청사에서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된 소감을 말하고 있다.

비건은 올해 3월 경질된 허버트 맥매스터 전 NSC 보좌관의 유력한 후임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그 자리에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전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을 앉혔다.

미 안보 전문가들은 비건이 북핵 문제에 정통한 인물이란 평을 내놓고 있다. 특히 그가 1994년 미·북 비핵화 협상 결과인 ‘제네바 합의’ 이행 여부를 관리·감독한 경험을 높이 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6·12 정상회담 이후 미·북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비건이 대북정책 특별대표로서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 외교·안보통…포드서 국제 부문 총괄

비건의 현 직함은 미국 ‘빅3’ 자동차 기업 포드자동차의 국제 대(對)정부 담당 부회장이다. 비건은 14년 간 부회장직을 맡아 포드의 무역 전략과 정치적 위험성 평가 등을 총괄했다. 비건의 대북정책 특별대표 임명 소식이 전해진 후 포드자동차는 그가 이달 31일 부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비건은 포드 입사 전 미국 정계에서 외교·안보 관련 경험을 쌓았다. 그는 미 미시건대에서 정치학과 러시아어를 전공했다. 비건은 대학 졸업 후 미 의회 외교위원회와 미 워싱턴 정치 싱크탱크 아스펜연구소에서 일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1기(2001~2005년)가 시작된 2001년 백악관 NSC에 합류했다. 그는 2003년까지 NSC에서 당시 NSC 보좌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을 보좌했고 NSC 최고운영책임자도 맡았다.

그는 이후 빌 프리스트 전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의 보좌관을 거쳐 포드에 입사했다. 비건은 2008년 미 대선 때는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외교 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미국 국무장관은 2018년 8월 23일 스티븐 비건 미 포드자동차 부회장을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했다고 발표하며 다음 주 북한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 "북한 FFVD가 목표"

트럼프 대통령도 외교·안보 베테랑인 비건을 눈여겨봤다. 그가 맥매스터 전 NSC 보좌관을 전격 해임했을 때 비건이 후임자로 거론됐다. 라이스 전 장관도 그를 적극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스 전 장관은 올해 3월 미 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비건을 ‘탁월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NSC 보좌관으로 비건이 아닌 볼턴을 선택했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비건의 대북 경력을 놓치지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 실무 협상을 주도하고 있긴 하지만, 그가 북핵 협상에만 관심을 쏟긴 어려운 상황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스티븐은 특별대표로서 미국의 대북 정책을 지휘하고, 김정은이 합의한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 즉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FFVD)’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건이 포드 국제 담당 부회장으로서 각국 정부와 협상해 성과를 냈던 역량과 헌신으로 북한 문제 해결에 전념할 것이라고 했다.

비건도 북한 비핵화 협상 추진에 의지를 표했다. 그는 "이 일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이 문제들은 어렵고, 해결하기 힘들겠지만, 대통령이 그 시작을 열었고 북한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기회를 붙잡아 이를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FFVD가 비핵화의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이끈 미 대표단이 2018년 7월 7일 북한 평양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이끈 북측 대표단과 협상을 했다.

◇ ‘북핵 문제 정통’ 평가…비핵화 협상서 어떤 역할할지 주목

비건은 다음 주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에 동행한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두 달이 지났지만 양측 비핵화 협상엔 별다른 진전이 없다. 북한은 미국에 노골적으로 종전 선언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비핵화가 먼저라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최근 북한과 다시 대화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20일 김정은과 2차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폼페이오 장관도 4차 방북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1·2차 방북 때는 김정은과 면담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냈으나, 지난달 3차 방북 때는 김정은을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다음 주 4차 방북이 양측 협상에 분수령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비건이 대북정책 특별대표로서 데뷔전에서 어떤 역할을 해낼지 주목된다.

비건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을 보좌하며 미·북 비핵화 회담의 결과물인 ‘제네바 합의’에 관한 의회 감독 업무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북한은 1994년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면 북한에 경수로 건설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긴 제네바 합의를 맺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는 당시 비건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지원금 관련 예산 배정과 북한 관련 청문회 개최 등에 관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건이 북한의 협상 전략에 관해 잘 알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의 비핵화 협상을 추진하는 데 적합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비건은 전임 행정부에서 북한 문제를 다룬 경험이 많고, 명석한 판단력을 가진 안보 전문가"라며 "힘든 시기에 대북정책 특별대표직을 잘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니스 와일더 전 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미국의소리(VOA)와 인터뷰에서 비건을 의회와 행정부, 경제계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와일더 전 보좌관은 비건과 부시 행정부에서 호흡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