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우 사회정책부 기자

최근 베트남 여행을 갔다 온 지인이 인천공항 세관검사에 걸렸다. 출국하며 산 면세품을 그대로 들고 돌아왔다가 입국 면세 한도를 넘긴 게 문제였다. 출국 면세점 구매 한도는 미화(美貨) 3000달러지만 입국할 땐 600달러 제한을 받는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지인은 "여행 내내 면세품을 싸들고 다니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세금까지 물었다"며 "이럴 거면 입국할 때 면세점에 가게 하지 왜 출국할 때만 면세점이 있는 거냐"고 했다. 세관 관계자는 "실제로 출국할 때 산 면세품을 그대로 들고 다니다가 돌아올 때 관세를 무는 여행객이 많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입국장 면세점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 배경도 이런 불편을 해소하자는 취지에서였다. 문 대통령은 "(규제 혁신을)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와 국민 생활에서 크고 작은 불합리와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이 혁신"이라고 했다.

세계 71국, 135개 공항에서 운영하는 입국장 면세점이 유독 우리나라 공항에만 없다. 그 탓에 국민은 시내나 출국 면세점에서 산 상품을 여행 기간 내내 들고 다니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인천공항공사가 2002년부터 2017년까지 국민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84%가 "입국장 면세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국민적 요구 또한 높다. 그런데도 2003년부터 지금까지 6차례 입국장 면세점을 도입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기존 제도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국적 항공사나 관세청 등이 강력 반대했기 때문이다.

입국장 면세점 하나 설치하는 일도 이렇게 어려운데, 규제 혁신 드라이브를 거는 문 대통령 앞에는 지지층 반대라는 더 큰 난관이 놓여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은산(銀産) 분리 규제 완화나 원격의료 도입은 모두 국민이 누릴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필요한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참여연대나 민주노총 등 정부에 우호적인 세력들이 이념을 이유로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나 이라크 파병을 강행했다가 지지율이 폭락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진짜 규제 혁신은 이익집단들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국민 눈높이에 맞춰 생각하는 데서 시작한다. 규제를 풀고 경제 활력을 살려야 국민이 체감하는 삶도 나아진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이다. 문 대통령이 말하던 '비정상의 정상화' '상식이 통하는 사회'와 일맥상통한다.

이렇게 당연한 일을 하는 데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진짜 혁신은 특별한 게 아니라 국민이 잘 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번에 용기를 내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