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일자리 쇼크'를 해결하기 위해 내년에 일자리에 더 많은 예산을 퍼붓기로 19일 합의했다. 올해 본예산과 추경을 합쳐 20조원 이상을 일자리에 퍼부었는데도 고용 참사가 빚어지자 일자리 예산 증가율을 올해(12.6%)보다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결국 내년에 최소 22조5000억원이 일자리 예산으로 투입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미 펑펑 쓰고 있는 정부 일자리 예산이 효과가 미미한 데다 제대로 집행도 되지 않은 채 줄줄 새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지율 급락에 당황한 정부·여당은 '될 때까지 재정을 투입하겠다'며 오기(傲氣)를 부리고 있다.

일자리 하나당 1억 넘게 써

기획재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올해 정부가 배정한 일자리 예산은 약 19조2300억원, 취업자 증가 목표치는 18만명이다. 정부의 직접 고용뿐 아니라 민간 기업이 창출하는 일자리를 모두 합친 숫자다. 취업자 증가 수를 일자리 예산으로 나누면 일자리 1개를 만드는 데 1억684만원이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지난해 늘어난 일자리 1개당 예산 (5403만원)의 2배에 가깝다.

떨어진 자리만큼… 너무나도 큰 두 경제수장의 간극 - 19일 국회에서는 긴급 당·정·청(黨政靑) 회의가 열려‘일자리 대책’이 논의됐다. 오른쪽부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홍영표 원내대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에 임하고 있다. 이날 당·정·청은 정책기조 변화 대신 추경 등 예산을 투입하는 대책을 주로 내놨다.

이 같은 결과는 정부의 취업 지원 정책이 점점 더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임이자 의원에 따르면, 정부가 2016~2017년 취업 정보와 일자리 알선 등 '고용 서비스'를 제공한 121만명 중 약 52만명(43.3%)만 구직에 성공했다. 이 중에서도 1년 이상 일한 비율은 35%에 그쳤다. 정부 알선으로 일자리를 얻는 사람 셋 중 둘은 1년 이내에 그만둔다는 것이다. 또 정부의 '고용 서비스'로 취업한 사람의 월급은 160만원에 그쳤다. 한 고용 서비스 기관 담당자는 "상용직(정규직)으로 취업을 시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서 "실적을 내려면 일용직으로 취업시키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줄줄 새는 일자리 예산

일자리 사업이 '용돈 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부는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적성과 취업 상담, 직업 훈련, 취업 알선 등을 제공하는 '취업 성공 패키지'에 연간 5000억원을 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훈련수당으로 한 달 30만원가량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취업 성공 패키지를 거쳐 취업하고 6개월도 안 돼 관두는 경우가 38%에 이른다. 취업보다는 사실상 수당을 받기 위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취업준비생 카페 등에선 "큰 도움은 안 되지만 용돈 주는 사업"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부가 구직자의 직무 능력 향상을 위해 실시하는 '직업훈련' 사업이 취미 생활 등에 쓰이는 경우도 있다. 한 직업훈련 담당자는 "(취업 의사와 무관하게) 누구든 직업훈련비 지원을 받기 때문에, 취미로 집에서 요리하려고 요리를 배우는 사람도 있다"며 "그러니 취업으로 연계가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직업훈련을 받은 사람 가운데 6개월 안에 취업한 사람은 40%에 불과했고, 특히 해당 분야로 취업한 경우는 16%였다. 취업 후 1년 이상 일하는 비율은 21%에 그쳤다.

일자리 안정자금, 예산 3분의 1밖에 못 써

잡아놓은 일자리 관련 예산을 제대로 못 쓰는 경우도 빈번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추경호 의원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며 마련한 3조원 규모 '일자리 안정자금'은 최근까지 9000억원밖에 쓰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 영세 중소기업을 돕겠다며 예비타당성 조사도 생략하고 무리하게 예산을 편성했지만 있는 돈도 다 못 쓰는 상황이 된 것이다. 추 의원은 "올 하반기 최대한 돈을 쓴다고 해도 1조원 이상 남을 것으로 보인다"며 "애초부터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부실하게 대책을 설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최근 일자리안정자금에 대해 "올해 목표 인원의 95%가 신청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본다"며 "내년에도 3조원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재정 투입은 필요하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경직된 주 52시간제 적용 등을 우선 손봐야 한다"며 "이후 규제 합리화 등을 통해 민간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지원해야 재정 투입 효과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