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뉴욕 맨해튼 패션 업체 '수프림(Supreme)' 매장에선 생뚱맞게 쇠지렛대를 팔았다. T셔츠나 재킷을 파는 가게 한편에 쇠지렛대가 패션 지팡이처럼 진열됐다. 여느 지렛대와 다른 점은 수프림 로고가 박혔다는 것뿐이었다. 32달러짜리 이 지렛대가 요즘 중고 사이트에서 500달러에 팔린다. 수프림이 내놓은 소화기, 재떨이, 벽돌, 공구함도 나오자마자 품절됐고, 중고 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됐다. 충성 고객이 만들어낸 힘이다.

▶1994년 뉴욕에서 스케이트 보더에게 물건을 팔기 시작한 수프림은 최근 몇 년 새 10~20대를 겨냥한 스트리트 패션으로 크게 성공했다. 스케이트 보드를 탄 채 드나들기 쉽게 매장 문턱을 없앴다. '젊은 층의 성지'라는 말도 들었다. 30달러짜리 T셔츠와 100달러 넘는 후드 재킷이 주력 상품이다. 지난해 사모펀드 업체 칼라일은 이 회사 지분 절반을 5000만달러에 사들였다. 기업 가치를 1억달러 넘게 인정받은 셈이다. 업계에선 '길거리 패션의 샤넬'이란 찬사를 보낸다.

▶수프림의 힘은 '한정판'에서 나온다. 대부분 품목은 400점만 만들고 품절되면 다시 내놓지 않는다. 신상품이 나오자마자 물건이 동나는 이유다. 루이비통과 함께 만든 485달러짜리 티셔츠는 중고 사이트에서 7500달러에 팔린다. 데이미언 허스트 같은 세계적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나이키 같은 유명 브랜드와도 손잡는다.

▶엊그제 수프림이 협업한 '뉴욕포스트' 신문 23만부가 완판됐다고 한다. 신문 제호 아래 기사 대신 수프림 로고만 찍혔을 뿐인데 가판대 앞에 장사진을 이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창의적 협업을 해보자"고 수프림 측이 먼저 제의했다고 한다. 둘 다 뉴욕에서 시작한 기업이고 로고 애착도 강하다. 뉴욕포스트는 젊은 독자들을 겨냥했고, 수프림은 기성 세대를 향한 브랜드 홍보 효과를 노렸을 법하다. 이 신문은 그날 중고 사이트에서 벌써 10배가 넘는 값에 거래됐다.

▶수프림 로고는 설치미술가 바버라 크루거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크루거는 빨간 테두리에 흰 글씨로 '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썼다. 이게 그의 대표작이다. 크루거는 그렇게 소비 자본주의와 쇼핑 중독을 비판했다. 그런데 크루거 작품을 본뜬 수프림 로고가 새로운 소비 영역을 펼쳐보이고 있다. 젊은 층의 반항 심리를 이용한 역발상일까. 수프림은 희소성과 아이러니의 힘을 빌려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렸다. 젊은 창업자들이 배울 게 많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