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 음악이 울려 퍼지자, 앳된 얼굴의 소녀들이 물속에서 리듬에 맞춰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8명은 마치 아이돌 칼 군무(群舞)처럼 일사불란하게 동작을 맞춰나갔다. 이들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아티스틱 스위밍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약 4분간 수중 연기를 펼친 막내 김준희(16·성남 동광고 1)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젠 8명이 눈 감고서도 똑같이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매일 훈련하느라 지쳤지만, 아시안게임에 나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저절로 힐링이 돼요."

한국 아티스틱 스위밍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위해 팀 종목(8인)에 출전하는 국가대표를 지난해 12월 선발했다. 2005년까지는 팀 종목 대표가 있었으나 선수층이 얇아 이후엔 솔로·듀엣 종목만 국제 대회에 나섰다. 팀 종목은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부터 정식 종목이 됐지만, 한국이 아티스틱 스위밍 팀 종목에 출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3년 만에 결성된 아티스틱 스위밍 대표팀(팀 종목)은 첫 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두고 설렌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왼쪽부터 구예모(17·서울 정신여고 2), 최정연(17·서울 정신여고 2), 이유진(18·서울 정신여고 3), 이리영(18·부산체고 3), 백서연(18·서울 정신여고 3), 김소진(19·이화여대), 정영희(22·한국체대), 엄지완(22·연세대). 이들은 “이번 아시안게임 출전 자체만으로도 꿈을 이룬 것처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총 10명(예비 2명 포함)으로 구성된 대표팀엔 여고생이 7명이나 있다. 이 중 수능을 앞둔 고3 학생만 4명이다. 여고생들은 오로지 아시안게임 출전을 목표로 '낮엔 공부, 오후엔 훈련' 일상을 쳇바퀴 돌 듯 반복했다.

작년 12월부터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합숙 훈련을 해온 학생들은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1시간 정도 훈련을 한 뒤 학교로 향했다. 팀이 결성된 초반엔 서울에 셔틀로 왔다 갔다 하다 선수촌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학교에서 위탁 교육 형태로 수업을 들었다. 오전 수업이 끝난 후엔 선수촌으로 돌아와 오후에 3~4시간 동안 수영장에서 안무 훈련에 매진했다. 백서연(18·서울 정신여고 3)은 "수능 공부 때문에 저녁 먹은 뒤엔 동영상 강의를 들을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겨울·여름방학 때는 하루에 10시간 넘게 수영장 물 밖을 나오지 않고 훈련에만 올인했다고 한다.

8개월간의 고된 훈련이 이어졌지만 선수들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대표팀은 한목소리로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 아티스틱 스위밍 실업팀은 하나도 없고, 중·고교팀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열악한 훈련 환경으로 국내 아티스틱 스위밍 선수는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나마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은 한 달 훈련 수당 120만원을 받아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수는 "대학 선수들은 수족관 공연이 있을 때마다 알바를 뛰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4월 말 처음으로 출전한 국제 대회(재팬오픈)에서 4위에 오르며 아시안게임 메달 전망을 밝혔다. 하지만 수년간 호흡을 맞춘 다른 나라 팀들에 비해선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장 엄지완(22·연세대)은 "메달을 따면 정말 좋겠지만, 저희에겐 이번 아시안게임 출전 자체만으로도 꿈을 이룬 것처럼 정말 기뻐요"라고 말했다.

☞아티스틱 스위밍(Artistic Swimming)

수중(水中)에서 음악에 맞춰 연기를 펼치는 스포츠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혹은 ‘수중 발레’라고도 한다. 출전 인원에 따라 솔로(1명)·듀엣(2명)·트리오(3명)·팀(8명)·콤비네이션(10명)·하이라이트(10명)로 구분된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2종목(듀엣, 팀) 경기가 펼쳐진다. 팀 종목은 2006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