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운 논설위원

얼마 전 만난 박정희 정부 출신의 한 원로는 "박 전 대통령이 임기 초반 3년 새 경제사령탑인 경제기획원 장관을 7명이나 바꾼 사연을 현 정부 사람들이 살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가 말하려는 건 '한강의 기적' 같은 뻔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이 경제문제로 수렁을 헤맸던 집권 초 실패담이었다.

박정희는 1961년 5·16 공약 제4조에서 '민생고 해결'과 '자주경제 재건'을 내걸었다. '자주경제'는 당시 신생 독립국들 사이에 유행하던 일종의 '민족경제론'이었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원조 자금이 줄어든 만큼 수입 물량을 줄이고 대신 국내 생산으로 이를 충당해 자립하는 게 골자였다. 그러려면 수입 대체 산업을 육성해야 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은 산업 기반과 자본이 변변치 않았다.

1962년 장롱 속 자금을 끌어내 개발 자금으로 쓰기 위해 화폐 개혁을 단행했지만 실패했다. 박정희는 집권 직후 3년간 경제부처를 총괄하는 경제기획원 장관을 7번 교체할 정도로 애가 탔다. 이에 대해 이 원로는 "정책 방향이 잘못되면 사람을 아무리 바꿔도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는 결국 1964년 고집했던 민족경제론에서 퇴각했다. 수출 주도형 공업화 정책은 이런 시행착오 끝에 나왔다. 그가 궤도를 수정한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61년 85달러에서 지난해 2만9745달러로 350배 뛰었다. 국민의 피땀으로 이룬 성과지만 박정희가 계속 폐쇄적 민족경제를 고집했다면 제3세계 국가의 길을 갔을 수 있다.

실제로 1961년 우리와 소득 수준이 비슷했던 케냐는 지금도 1600달러 대에 머물러 있다. 박정희의 방향 전환에 대해 당시 참모들은 "설익은 정책으로 시행착오를 겪은 뒤 과감하게 방향을 바꾼 결단"이라고 했다. 이후에도 관료층 내부와 업계의 반발이 거셌지만, 박정희는 이후 3년간 재무장관을 5명 갈아치우며 시장 자유화를 끈질기게 밀어붙였다.

출범 1년 3개월을 넘긴 문재인 정부가 경제에서 고전하고 있다. 이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 그리고 규제 혁신을 통한 혁신성장을 성장 양축(兩軸)으로 삼으며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다. 하지만 청년 실업은 최악이고 소득 최하위층은 오히려 벌이가 줄었다. 기업 설비투자도 내리막길을 걸으며 성장 엔진까지 식고 있다. 규제를 풀고 기업 활력을 살려 잘나가는 선진국들과 정반대로 세금을 쏟아부어 일자리를 만드는 역주행 노선을 고집한 탓이 크다.

많은 경제 전문가는 현 정부가 현장과 동떨어진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하면서 대기업 귀족 노조의 기득권은 방치하는 식의 경제철학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 경제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한다.

꿈적 않을 것 같던 문 대통령에게서 최근 일부 변화 조짐이 있기는 하다. 인터넷 은행 육성을 위해 은산 분리(銀産 分離·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최대 1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 완화 방침을 밝히며 대대적인 규제 혁신 의지를 밝힌 게 한 예이다.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민생 해결을 위한 실사구시 정신"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여당과 지지층 내부 반발이 거세다. 여당 핵심부에선 "지금의 경제위기론은 수구 보수 세력이 조장한 것"이라는 날 선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소득주도성장 노선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며 규제 그물은 놔둔 채 혁신성장까지 하겠다는 발상이 훨씬 수구(守舊)적이지 않나? 문 대통령이 이런 장애물을 돌파하고 방향을 바꾸느냐 여부에 남은 임기의 성패(成敗)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