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떠나 베이징 도착한 北리용호 -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10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차량을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리 외무상은 하루 전 이란 방문 중 “핵 기술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의 "핵 기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9일 발언을 놓고 "미국이 체제 보장을 해줘도 '완전한 비핵화'는 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선언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란 얘기다. 북한이 그간 관영 매체 등을 통해 미국의 CVID 요구를 '일방적·강도적'이라고 비난했지만, 외무상이 직접 이런 태도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리용호의 발언 내용에 대해 이란 프레스TV는 '핵 기술(technology)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고, 메흐르 통신은 '핵 과학(science)'이라고 번역했다. '핵 지식'으로 번역한 매체도 있다. 외교 소식통은 "리용호의 말을 북한 통역이 페르시아어로 바꾸고 이란 매체들이 다시 영어로 중역(重譯)하면서 저마다 표현이 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구체적 표현이 무엇이든 '비핵화를 하더라도 언제든 핵 능력을 되돌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요구해온 CVID에서 'I'에 해당하는 '불가역적(irreversible)' 비핵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리용호가 단순히 '불가역적 비핵화'만 반대한 게 아니다"고 분석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리용호의 말은 비핵화의 시작인 신고·검증도 하지 않겠다는 얘기"라며 "신고·검증을 하면 핵 기술 수준이 외부에 드러나 보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미국은 북한의 종전(終戰) 선언 요구에 "핵 시설 목록부터 제출하라"고 맞서고 있다. 핵 시설 목록 제출이 '신고'에 해당한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주장하며 핵 동결이나 핵 군축을 뜻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내세워 왔다"며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외교가에선 리용호가 최근 미국과 비핵화와 제재 문제로 갈등을 겪는 이란에 가서 비핵화에 역행하는 발언을 쏟아낸 것을 주목하고 있다.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미국과 벌이는 비핵화 협상이 교착되자 북한이 이란을 끌어들여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문제가 향후 미·북 비핵화 협상에서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