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선우 정치부 기자

청와대가 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한산 석탄 밀반입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북한산 석탄 반입 관련 동향을 점검하고, 정부 차원의 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관련법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언론 보도로 북 석탄 파문이 터진 지 약 한 달 만에야 공식 조치를 언급한 셈이다. 함구(緘口)로 일관해오던 데 비하면 그나마 진전됐지만, 구체적 내용은 없었다.

정부는 이미 작년 3월 북한산 석탄을 수입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업체에 대한 신고를 받았다. 관세청은 그간 관련 업체에 대해 작년 11월부터 10개월째 조사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외교부·통일부·산업부·해수부·관세청·경찰 등 이번 사태와 관련 있는 어떤 기관도 국민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우리 소관이 아니다"는 한심한 답변도 나왔다. 그러다 미국 의회에서 한국 업체도 제재할 수 있다는 경고장이 날아들자 관세청은 일부 석탄 수입업체가 북한산임을 알고도 러시아산으로 속여 수입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뒤늦게 알렸다. 외교부에선 "수입 업자의 일탈"이라고 선 긋기에 나섰다.

우리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은 점점 커졌다. 연방하원 테러리즘 비(非)확산무역소위원장인 테드 포 의원은 8일 "북한산 의심 석탄 밀반입에 연루된 기업이 한국 기업이더라도 세컨더리 보이콧을 부과해야 한다"고 했다. 존 볼턴 백악관 NSC 보좌관은 그 하루 전 TV에 출연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 내용을 소개하며 "기존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방법을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석탄 밀수입 문제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비핵화 협상과 남·북·미 관계에 '대형 폭탄'이 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산 석탄 밀반입이 사실로 드러나면 한국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과 관련 금융기관 등이 유엔 제재 대상이 된다. 경제적 타격과 국가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하다. 야당에서조차 "대여(對與) 투쟁도 좋지만 국가 이익도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관련 업체들을 철저히 수사해 더 이상 의혹이 제기되지 않도록 투명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책임자에 대해선 엄중한 법적 조치도 해야 한다. 청와대는 지난달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 문건' 논란 당시, 군사 기밀 유출 논란을 무릅쓰면서 대변인이 직접 일부 문건을 공개했다. 대통령의 휴가 사진, 독서 목록은 물론 반려견 등의 근황까지 알리는 데 바빴다.

그런 청와대가 대북 제재 위반이라는 국제적 논란에는 이렇게 무반응·무대책으로 대응해왔던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정부가 앞으로도 안이하게 대응하다간 우리 기업이 미국으로부터 강력 제재를 받고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