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윤

우리네 속담에 '집 떠나면 고생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지혜로운 조상의 말씀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남들이 산이고 바다로 휴가를 떠날 때에도 굳건히 집을 지켰다. 유난히 무더웠던 7월의 어느 날 역시, 침대에 가만히 드러누워 솔솔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안락하기만 했던 나의 자그마한 방이 참을 수 없이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떠나고 싶다!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 좋다! 몇 년 만에 일어난 여행 욕구가 실로 생경하여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이 순간을 놓치면 한동안은 방구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 손으로는 배낭에다 세면도구와 지갑 따위를 때려 넣으면서 휴대폰을 쥔 다른 한 손으로는 부산행 비행기 표를 결제했다.

어디에 가서 무얼 하면 좋을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태어나 부산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해운대, 광안대교, 밀면, 돼지국밥, 태종대, 자갈치시장, 달맞이고개, 또 뭐가 있더라.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던 부산과 관련된 단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계획을 세운다 한들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나였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오이소' 하면 들어가고 '보이소' 하면 구경하고 '사이소' 하면 지갑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해운대였다. 파란 하늘과 그보다 더 파란 바다를 마주하니 꽉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하였다. 모래바람이 사정없이 뺨을 갈겨대는데도 그저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여행 오니까 별게 다 재밌네. 이 맛에 놀러들 다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여행의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파도처럼 끝도 없이 밀려오는 인파는 나의 혼을 쏙 빼놓았고, 살갗을 구워버릴 기세로 내리쬐는 뙤약볕은 나를 금세 지치게 했으며, 대목을 맞아 왁자한 식당은 혼자인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번번이 지나치기만 했다. 하는 수 없이 예약해둔 숙소에 일찌감치 들어가 짐을 풀었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광안대교가 퍽 수려하기는 하였으나 네모나게 잘려버린 풍경은 이발소에 걸린 그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시푸르죽죽한 바다를 얼마쯤 멍하니 바라보다가 커튼을 홱 치고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새하얗긴 하지만 어쩐지 깨끗하진 않은 것 같은 이불을 덮고서 생각했다. 내일은 또 어딜 가지? 이럴 거면 부산에는 왜 왔지?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지? 떠나온 집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3박 4일간의 부산 여행은 무척 심심하고 몹시 쓸쓸했다. 오죽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제일 신났을까. 기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집 냄새가 훅 끼쳐왔다. 여기가 바로 천국인가! 이 좋은 데를 두고서 멀리까지 떠나 생고생을 한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게다가 문자 메시지로 날아온 카드 사용 내역을 합산해보니 한층 깊은 후회가 물밀듯 밀려오며 속이 다 쓰렸다. 나는 나를 달래며 생각했다. 그래도 다녀오길 잘했지 뭐야.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리하여 내가 사는 이 작고 초라한 집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 팔베개를 하고 누워 능청스레 혼잣말을 외쳐본다. 아이고, 역시 집이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