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목표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조건 금메달'입니다."

지난 3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만난 남자 배구 대표팀 김호철 감독이 비장한 얼굴로 짧게 말했다. 그러곤 선수들이 훈련 중인 코트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 배구 대표 선수들은 이날 선수 한 명당 200개의 서브 리시브를 소화했다. 스파이크 서브 훈련을 하던 문성민, 정지석, 전광인의 기세가 주춤하자 곧바로 "1㎜라도 더 높게!"란 호통이 김 감독 입에서 튀어나왔다. 김 감독의 호통은 체력을 다지는 웨이트장에서도 이어졌다. 각자 소화하는 무게를 올리면서 얼굴을 찡그렸지만, 누구 하나 불만스러운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모든 국가대표팀은 당연히 우승이 목표다. 하지만 남자 배구처럼 금메달이 간절한 종목은 없을 것 같다. 그 이유는 4년 전인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남자 축구, 야구, 농구 대표팀 모두 금메달을 따 국민 감동 대회를 만들었지만 남자 배구는 동메달에 그쳤다. 당시 동메달을 따고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남자 배구 대표팀 모습.

당시 한국 구기 스포츠는 홈 이점과 함께 라이벌인 중국·일본이 주전급 대신 1.5군, 2군급 선수를 내보낸 데 힘입어 거의 모든 종목을 휩쓸다시피 했다. 남자 축구는 임창우의 극적인 결승골로 1대0으로 북한을 누르고 정상에 올랐고, 남자 농구는 이란을 맞이해 79대77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남자 야구 대표팀도 대만을 6대3으로 눌러 강세를 이어갔다. 비단 남자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여자 농구와 여자 배구도 금메달 행진에 가세했다.

반면 남자 배구는 처참한 수모를 맛봤다. 결승 진출은커녕 준결승에서 2군급으로 구성된 일본에 1대3으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남자 배구는 3·4위전에서 역시 2군급을 내보낸 중국에 한 세트를 내준 끝에 3대1로 승리했다.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남자 배구 대표팀은 박수 대신 실망 섞인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2006년 아시안게임 이후 8년 만에 금메달을 따겠다는 꿈도 물거품이 됐다.

남자 배구는 올해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는 출전 16개국 중 최하위에 머물러 하부 리그인 '챌린저컵'으로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김호철 감독은 "세계와의 실력 차이를 절감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라는 말로 패배를 자인했다. 배구계에선 현재 남자 배구 수준으로는 2020 도쿄올림픽 출전도 어렵다고 본다. 남자 배구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끝으로 지난 리우까지 4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했다.

남자 배구는 아시안게임을 자신감 회복의 계기로 삼고 있다. 하지만 금메달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번에도 일본과 중국은 9월 이탈리아 세계선수권대회에 대비해 1군 대신 2군으로 팀을 꾸렸다. 하지만 워낙 저변이 탄탄해 섣불리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 더 큰 강적은 지난 대회 우승팀 이란이다. 이란은 4년 전 인천처럼 이번에도 2m가 넘는 라이트 가포르(28)와 카제미(21) 등 대표팀 주전들이 대거 출전한다.

김호철 감독은 "강력한 스파이크 서브를 앞세운 공격적인 배구에 승부를 걸겠다"며 "반드시 금메달을 따내 남자 배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강훈련을 소화하며 땀범벅이 된 문성민도 "도하에서 선배들과 함께 금메달을 입에 물던 영광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이번엔 그 기쁨을 나이 어린 후배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전광인 역시 "4년 전 인천의 눈물을 기억한다. 인생 마지막 대회로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뛸 작정"이라며 각오를 펼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