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발 고속철(SRT) 운영사인 SR이 3일 이사회를 열고 코레일 출신 신임 사장을 선임했다. 새 사장은 철도청에 입사한 후 35년간 코레일에서만 일한 '코레일 맨'이다. 이번 인사는 SR과 코레일 통합에 반대했던 전임 SR 사장이 임기를 절반이나 남기고 갑자기 물러나면서 이루어졌다. 정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2016년 말 SR이 출범한 취지는 철도 독점의 구태를 경쟁 체제로 바꿔보자는 것이었다. 경쟁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SR이 요금을 10% 내리면 코레일이 운임 5~10%를 마일리지로 주는 서비스로 맞대응하는 식이었다. 철도산업의 효율이 전반적으로 향상됐고 고객은 싼 가격으로 더 좋아진 서비스를 이용했다. 철도 승객이 이전보다 하루 평균 4만명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권 바뀌고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코레일 사장으로 오면서 이 경쟁 체제부터 없애려고 했다. SR을 코레일에 통합해 독점 체제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철도 통합을 위한 정부 용역을 발주했고 통합 반대파 SR 사장은 갑자기 쫓겨났다. 그러더니 코레일 출신을 경쟁사 사장으로 앉혔다. 신임 SR 사장이 할 일은 뻔하다. 하루빨리 SR을 없애고 코레일 독점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미 SR 이사진 4명 중 3명이 코레일 출신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이사회까지 장악했으니 앞으로 두 회사 통합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다.

세상 어디에나 경쟁이 없어져 독점이 되면 경영진과 노조는 땅 짚고 헤엄치며 소비자에게 갑질을 한다. 개선이나 혁신을 할 이유가 없다. 그만큼 소비자는 불편해지고 비싼 상품을 살 수밖에 없다. 철도 운영 효율성은 떨어지고 부담은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지난해만 해도 코레일 적자가 5000억원이 넘었다.

경쟁을 통한 철도 개혁의 시동을 건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였다. 철도 독점이 그야말로 적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공영' '독점' '노조 우선'이라는 낡은 좌파 이념에 빠져 스스로 걸어왔던 길조차 부정한다. 5년 정권 하나가 10년 이상 사회적 합의로 추진돼온 철도 개혁을 도루묵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