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고위직에 또 빈자리가 늘어났다. 부동산 등 대체투자를 책임지는 실장급이 최근 사표를 제출, 고위직 9개 가운데 5개가 공석(空席)이 됐다. 최고운용책임자(CIO)인 기금운용본부장 자리마저 역대 최장인 1년째 비어 있고, 인력 이탈이 꼬리를 물고 있다. 필요한 투자 인력이 278명인데 30명 넘게 모자란다. 국민 노후 자금 635조원을 운용하는 투자 전문 조직이 정원도 못 채우고 있다.

국민연금은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히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수익률은 꼴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수익률이 5년 새 최고인 7.3%였지만, 글로벌 연기금들에 비해 크게 뒤졌다. 지난해 노르웨이국부펀드는 13.2%, 캐나다 연기금과 미국 캘퍼스(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는 11%를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행정공제회(10.9%) 등 국내 다른 연기금에도 뒤진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우수한 인력 충원이 절실하지만, 있던 직원도 떠나는 중이다.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수익률은 0.89%로 추락했다. 연간 수익률로 환산하면 1.7% 정도다. 정기 예금 이자보다 못하다. 원금 까먹지 않아 다행인 수준이다.

기금운용본부가 이런 처지가 된 것은 글로벌 금융과 밀접하게 연결돼야 할 기금본부를 정치 논리로 전주에 억지로 가져다 놓은 탓이 크다. 거기에 정부가 낙하산 인사로 조직을 망가뜨렸다. 국민연금 이사장에 캠프 출신 정치인을 앉혔고, 기금운용본부장 공모에 청와대 정책실장이 개입했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퍼주기 복지를 늘리고, 스튜어드십 코드(주주권 행사 강화)를 도입해 대기업 경영에 간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문제다. 수익성과 안정성이 최우선이어야 하는데 이런 일을 벌이니 "책임질 일 하지 않겠다"고 떠난다는 것이다. 이런 소문이 시장에 다 퍼져서 후임자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국민연금 중에서도 기금운용본부만은 독립성을 강화하고 위치도 서울로 다시 옮기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지역에 별 도움이 되지도 않고 있다. 아예 공사(公社)로 만들어 국민연금에서 떼어놓거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같은 독립된 의사 결정 기구를 만드는 방안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