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이태원 햄버거 가게서 살해된 조중필씨
연이은 검찰 실수로 眞犯 패터슨 벌하는데 19년
유족, 국가상대 손배訴… "수사 지연으로 고통"
법원 배상책임 인정 "유족의 법익 침해했다"

검찰이 이태원 살인사건 현장검증을 위해 재연한 화장실 모형.

1997년 4월 3일 밤 9시 50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한 햄버거가게 화장실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조중필(당시 23세)씨는 화장에서 목과 가슴 등 9군데를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고, 병원으로 후송 중 숨졌다. 이른바 '이태원 살인사건'이다.

◇2명의 용의자, 엉뚱한 사람 지목한 檢
현장에서 검거된 용의자는 미군 자녀 두 명. 17살 동갑내기 아더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였다. 둘은 서로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초동수사를 맡았던 미군 범죄수사대(CID)와 경찰은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패터슨의 몸에 피가 묻어있었다는 게 근거였다. 그가 자책했다는 친구의 진술도 있고, 범행에 사용한 칼도 발견됐다. 범행 당시 입고 있던 셔츠를 불태우고 남은 조각 등을 찾아냈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용의자는 바뀌었다. 검찰은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 등을 근거로 리가 살인을 저질렀고 패터슨은 흉기를 버린 혐의만 있다고 봤다. 용의자가 뒤바뀌는데는 조씨 사체를 부검했던 부검의 소견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범인은 피해자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힘이 센 사람이었을 것 같다. 범인은 키가 176cm인 조씨보다 컸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리는 180cm에 105kg, 패터슨은 172cm에 63kg이었던 것이다.

재판도 검찰의 기소내용대로 진행됐다. 1심과 2심은 리와 패터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패터슨은 징역 1년6개월을 확정받아 수감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8월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러나 리는 패터슨이 석방되기 4개월 전인 1998년 4월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리가 범인이라는) 패터슨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파기환송심을 거쳐 리는 1999년 무죄가 확정됐다.

이태원 살인사건 수사 과정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에드워드 리와 아서 패터슨의 주장을 각각 삽화로 표현한 것.

◇7년 만에 재수사… 범인 데려오는데 16년
리가 무죄 판결을 받자 조씨의 유족은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재수사에 착수했으나, 담당 검사의 실수로 패터슨에 대한 출국정지가 연장되지 않았다. 출국정지 조치가 풀린 시점은 1999년 8월 24일부터 25일 단 이틀이었지만, 패터슨은 그 사이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후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검찰은 결국 2002년 10월 패터슨에 대해 기소중지 조치를 내렸다.

수사는 7년이 지난 2009년에야 다시 시작됐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개봉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법무부는 그해 12월 미국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다. 2년 뒤 패터슨은 미국에서 체포됐다. 하지만 범죄인 인도재판에만 4년 가까이 걸렸고, 2015년 9월이 돼서야 그를 한국에 데려왔다.

18년만에 돌고 돌아 패터슨을 법정에 세웠다. 그는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범행 당시 만 17세였던 점을 감안해 소년범에게 선고할 수 있는 최고 형량을 선택했다. 이 판결은 2017년 1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그날 햄버거가게에서는 무슨 일이...
재판에서 드러난 당시 상황은 이렇다. 패터슨은 리와 햄버거를 먹던 중이었다. 리가 "나가서 아무나 칼로 찔러봐라", "빨리 나가서 누군가 쑤셔버려라"라며 부추겼다. 마침 술에 취해 화장실로 들어가는 조씨를 발견한 패터슨은 "뭔가 멋진 것을 보여줄 테니 화장실에 함께 가자(I'm going to show you something cool. Come in the bathroom with me)"고 했다. 패터슨이 앞서고 리가 뒤따랐다.

둘은 화장실 안에 조씨 외에 다른사람이 없는지부터 살폈다. 리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척 하며 다른사람이 못들어오도록 막는 역할을 했다. 패터슨은 오른쪽 소변기 앞에 서있는 조씨를 흉기로 9차례나 찔렀다. 리는 거울로 조씨를 살해하는 패터슨을 목격했다.

조선DB

◇법원 "잘못된 수사, 유족의 법익 침해"
조씨의 유족은 부실수사로 실체적 진실 규명이 늦어졌고 고통이 컸다며 국가를 상대로 10억9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가 있었는지, 이로 인해 조씨 유족이 피해를 입었는지가 쟁점이었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재판장 오상용)는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가는 위자료 3억6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조씨 부모에게 각 1억5000만원, 누나 3명에게 각 2000만원의 위자료를 국가가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에 대해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경험칙상 긍정하기 어렵다”며 “이러한 수사기관의 행위는 유족들의 인격적 법익(法益)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기관의 잘못으로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지 못해 유족들은 시민사회와 언론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면서 “그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집을 파는 등 정상적인 일상 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해자 고(故) 조중필씨의 모친 이복수씨.

◇조씨 어머니 "국민들 힘들지 않게 법 똑바로 돼야"
승소했지만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가족들의 슬픔도 여전하다. 조씨의 어머니 이복수씨는 선고 직후 "어떻게든 억울하게 죽은 중필이 한은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우리 같이 힘없는 국민들이 힘들게 살지 않도록 법이 똑바로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배상액이) 너무 적게 나와서 섭섭하다”며 “진범을 법정에 세우려 18년 동안 집까지 팔아가며 많은 돈을 썼다"고 했다. 위자료는 유족들이 겪었을 정신적·육체적·물질적 피해와 현재의 국민 소득 수준, 통화가치 등을 고려해 산정됐다.

유족 측 변호인은 "범죄 피해자에 대해 어느정도까지 보호하고, 공소제기의 위법성을 어떻게 판단할 지에 관해 의미있는 판결이었다"고 했다. 유족 측은 항소 여부를 검토한 뒤 결정할 방침이다. 유족과 국가 모두 1주일 내에 항소하지 않으면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된다.

◇사건일지
―1997년 4월 3일 대학생 조중필씨 이태원 햄버거 가게에서 흉기에 찔려 사망
―1997년 4월 검찰, 에드워드 리 살인 혐의, 패터슨 증거 인멸 혐의로 기소
―1997년 10월 1심 법원, 에드워드 리 무기징역, 패터슨 징역 1년6개월 선고
―1998년 4월 대법원, "에드워드 리 범인 아니다" 파기환송
―1998년 8월 패터슨 광복절 특사
―1998년 9월 에드워드 리 무죄 확정
―1999년 8월 패터슨, 미국으로 도주
―2009년 9월 검찰, 이태원 살인사건 재수사 착수
―2011년 5월 미국 수사 당국 패터슨 검거
―2011년 12월 검찰, 패터슨 살인 혐의 기소
―2012년 10월 美 LA연방법원, 패터슨 한국 송환 결정
―2015년 9월 패터슨 한국 강제 송환
―2015년 10월 패터슨 1심 공판 시작
―2016년 1월 검찰, 패터슨에 징역 20년 구형
―2016년1월 1심, 패터슨에 징역 20년 선고
―2016년1월 항소심, 패터슨에 징역 20년 선고
―2017년1월 대법원 원심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