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소대장으로 군 복무를 할 때 얘기다. 운동하다 다친 소대원을 의무대로 인솔해가면 어김없이 기무부대 요원과 마주쳤다. 야간 점호 이후에 배탈이 난 소대원을 데려가도 어떻게 알고 왔는지 나타나 가혹 행위 당한 게 아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왜 묻는지보다 일개 병사가 의무대 가는 걸 어떻게 파악했는지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기무부대 요원들이 군내 통신망을 24시간 엿듣고 있었다. 이들의 군내 위세는 대단했다. 병사가 장교 계급장을 달고 다니기도 했다. 중령이 기무사 병장에게 쩔쩔매는 모습도 보았다.

▶기무사령부는 각급 부대에 요원들을 파견해놓고 정보를 수집한다. 군내 정보 신경망이라 할 수 있다. 1979년 10·26 당시 기무사의 전신(前身) 보안사는 첩보망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사실을 초기에 확인했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체포하며 권력의 핵으로 떠올랐다. 5공 시절엔 일반 장교들이 두세 계급 아래 보안부대 장교에게 상석을 양보할 정도로 보안사 위세가 대단했다.

▶기무사는 원래 군내 간첩 적발 등 방첩(防諜)이 주임무다. 실제로는 군내 '이상 동향'을 감시하는 일을 해왔다. 기무사가 작성하는 장교 동향 보고는 기무사 파워의 원천이다. 장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해 진급 심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야전군 출신 장군들은 기무사를 좋아할 수 없었다. 앞에서는 웃고 뒤에선 욕했다.

▶기무사는 군 쿠데타를 막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쿠데타 문건을 만들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장군 출신들은 '지금 이 군대가 무슨 쿠데타를 하느냐'고 쓴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이들도 계엄 검토를 왜 합참이 하지 않고 기무사가 했느냐고 고개를 젓는다. 그만큼 군에도 기무사 편은 없다. 논란 와중에 기무부대 대령이 송영무 국방장관의 거짓말 의혹이 담긴 발언록을 폭로했다. 평소 기무사를 싫어하던 송 장관이 기무사를 개혁하려 했고 그로 인해 쌓인 기무사 측 반감이 계엄 문건 논란을 계기로 폭발했다는 분석도 있다.

▶기무(機務)의 사전적 의미는 '비밀을 지켜야 할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기무사는 기무 사항을 위계질서도 무시하고 외부에 폭로하는 지경이다. 아마도 '기무사'라는 이름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군내 정보기관을 아예 없앨 수는 없으니 새 이름으로 간판을 바꿀 것 같다. 이름이야 뭐가 되든 기무사가 만드는 정치 논란이 더는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