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여파...트럼프 정책에 퀄컴 운명 롤러코스터

미국의 퀄컴이 440억달러(약 49조 9400억원)규모의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업체 NXP 인수를 포기했다. 중국 반독점 당국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라는 지적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퀄컴은 25일(현지 시각) 예상을 웃도는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NXP 인수 포기 사실을 알리고, 투자자들에게 보상하는 차원에서 300억달러(약 34조 50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칩 생산업체인 퀄컴은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2016년 세계 반도체 역사상 최대규모 인수합병(M&A)에 합의했었다. 하지만 강제적인 기술 이전 등을 놓고 갈등을 겪은 미중 무역마찰이 상호 관세 부과를 개시하는 무역전쟁으로 비화되면서 결국 NXP 인수 시한인 25일까지 중국 당국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퀄컴은 NXP 인수 합의후 9개 관련 국가중 미국 일본 등 8개국으로부터 인수 승인을 받았었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사장이 지난 5월 베이징 포럼에서 인공지능(AI)의 미래를 소개하고 있다.

퀄컴은 2015년 NXP를 380억 달러(약 43조 13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의했고, NXP 주주들이 반대하자 인수가격을 440억 달러로 올려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복병에 거래가 무산된 것이다.

지난 5월말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2위 통신장비업체 ZTE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것을 시사하자 중국 당국이 이에 화답하기 위해 퀄컴의 NXP 인수를 곧 승인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중국은 지난해 퀄컴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ZTE 제재를 풀겠다는 공언은 지키면서도 무역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집으면서 미중 무역마찰이 심화되자 퀄컴의 NXP 인수 승인은 또 다시 표류하기 시작했다. 스티브 몰렌코프 퀄컴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에 “우리(영향력)를 넘어서는 무언가에 갇혔다”고 말했다.

퀄컴이 NXP를 인수하면 모바일에 이어 자동차 분야뿐 아니라 IT업계 전역에서 지배력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가 도래하는 미래에는 자동차가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니라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등 첨단 IT 기술의 최전선에 설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한 것이다.

중국 당국이 퀄컴의 NXP 인수를 승인하지 않은 것을 두고 ‘공정 검찰’로 불리는 반독점당국이 정치적인 수단으로 불공정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 탓에 미국 첨단기술의 상징인 퀄컴의 운명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싱가포르 브로드컴이 1170억달러(약 132조 7950억원)에 퀄컴 인수를 추진했지만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이 거래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브로드컴이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이 제동을 건 이유로 알려졌다.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하면 미래 정보기술 인프라인 5세대 이동통신(5G) 경쟁에서 미국이 중국에 뒤질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어 지난 4월 ZTE에 모든 미국 기업과의 거래 금지령을 내리면서 이 회사에 모바일 칩을 납품하던 퀄컴에 타격을 입혔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될 수록 퀄컴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퀄컴은 지난 5월에도 다탕텔레콤과 중국에서 합작사를 설럽하는 등 중국내 합작사업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있어 미중 무역전쟁의 리스크에 노출된 부분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퀄컴은 앞서 2015년엔 SMIC 화웨이 등과 함께 SMIC 신기술 연구 상하이법인을, 2016년에는 구이저우화신반도체와 구이저우에 합작사를, 중커촹다소프트웨어와 충칭에 합작사를 각각 세웠다. 2017년에도 다탕텔레콤 등과 궈이저우에 합작사를 설립했다. 지난 5월엔 베이징에서 퀄컴 인공지능(AI)혁신포럼을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