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음료와 디저트를 즐기며 바둑을 둘 수 있는‘바둑 카페’에서 20~30대 바둑 마니아들이 수담(手談)을 나누고 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카페. 마주 앉은 20대 남녀가 이렇게 말하며 인사했다. 테이블 위에는 바둑판과 바둑알 그리고 아이스 커피 두 잔이 놓였다. 이곳은 기원이 아니라 바둑 카페다. 카페 한쪽에는 바둑을 공부할 수 있는 책이 쌓여 있었다. 이날 여자친구와 바둑을 두러 온 직장인 김광일(28)씨는 "스마트폰 게임으로 종종 여자친구와 바둑 대결을 하는데 역시 바둑은 마주 앉아 표정을 보며 기 싸움을 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깔끔하고 세련되게 꾸며진 바둑 카페가 20~30대 바둑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다. 20~30대만 가입할 수 있는 바둑 모임 '오늘도 바둑'을 운영 중인 이승엽(27)씨는 "최근 바둑과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가 많이 나오며 바둑이 쿨하고 지적인 게임이라는 이미지가 젊은 사람들 사이에 생겼다"며 "스마트폰과 컴퓨터 게임에 질린 이들도 많이 찾는다"고 했다. 무역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최영민(33)씨는 "직업 특성상 중국 문화를 공부하는데, 드라마나 책을 보면 바둑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며 "지난해 시진핑 주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바둑판을 선물하며 '바둑 외교'까지 펼치는 것을 보고 어렸을 적 배웠던 바둑을 복습하는 중"이라고 했다.

바둑 카페는 담배 연기 자욱한 남성들의 공간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기원을 가기 꺼렸던 여성 바둑인들의 모임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날 찾은 역삼동 우리바둑카페에도 40대 여성 넷이 바둑판 앞에서 2시간 넘게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기료는 평균 5000원 선이고 음료 값은 별도. 기원은 하나둘 문을 닫는 추세지만, 대신 서울 강남구·서초구·서대문구 등 중심가와 경기 수원, 충남 천안 등 전국 곳곳에 바둑을 테마로 한 카페가 생겨난다.

바둑 카페를 운영하는 이들은 "90년대 전국을 휩쓴 바둑 교육 열풍으로 바둑을 배운 적이 있는 20~30대 수요를 노렸다"고 창업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조훈현·이창호 9단 등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90년대는 국내 바둑 인구가 10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대한바둑협회에 따르면 90년대 바둑교실당 평균 수강생 수는 약 200명으로 2016년(54.7명)에 비해 훨씬 많다. 서울 서대문구 꽃보다바둑카페 정성오 실장은 "온라인 바둑 게임에 접속하면 20~30대 젊은 사람이 많은데 이들이 오프라인에서 바둑을 즐길 공간이 거의 없었다"며 "바둑 카페가 생긴 후 20~30대 바둑 동호회 사람들이 주말마다 카페를 빌려 대회를 연다"고 했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는 "외국에서는 바둑을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레저 활동으로 생각하는 추세인데 한국에는 바둑을 고리타분한 게임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다"며 "바둑 카페같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을 통해 바둑의 이미지를 쇄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