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시간 끌기'로 비핵화 협상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이 다시 대북 제재의 고삐를 죄고 있다. 미 국무부는 20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모든 유엔 회원국은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한다"며 "압박 캠페인은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국무부는 그러면서 북한산 석탄의 한국 반입과 관련해 사실상 한국 정부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제재 위반 선박들이 32차례 한국에 입항하는 동안 억류하지 않았던 우리 정부는 억지성 해명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미 "북 지원 주체에 독자적 제재"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19일(현지 시각) VOA 방송에 "유엔 제재를 위반해 북한 정권을 계속 지원하는 주체에 대해서는 독자적 행동을 취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석탄이 중국 회사 소유 선박에 실려 지난해 10월 한국 포항과 인천항으로 들어온 것에 대한 논평이었다. 대북 제재 위반 주체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을 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북한산 석탄 거래에 관여한 중국·러시아뿐 아니라 한국도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돌려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뉴욕서 만난 한·미 외교 - 강경화(뒷모습) 외교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0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위 사진). 아래는 최근 선박 위치 정보 사이트 등에 나타난 북한 거래 의심 선박 위치를 나타낸 지도다. 파나마 선적의 ‘스카이 에인절’호와 시에라리온 선적의 ‘리치 글로리’호가 20일 아무 제약 없이 우리 영해를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이와 함께 최근 안보리 대북 제재위에 "올해 북한에 대한 정제유류 추가 공급을 금지해야 한다"는 요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로이터통신과 AP, AFP통신 등이 전한 바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이 1~5월 20척 이상의 선박을 동원해 총 89차례에 걸쳐 '선박 대 선박 이전' 수법의 유류 밀거래를 통해 최소 75만9793배럴의 정제유류를 획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보리가 정한 연간 상한선 50만 배럴을 이미 초과했으므로 더 이상 북한에 유류 제공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는 추가 정보를 요구하며 '6개월 보류'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억지 해명에만 급급한 한국 정부

이 같은 미국의 기류와 달리 우리 정부는 여전히 대북 제재 위반 건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선박 위치 정보 사이트 등에 따르면 작년 10월 북한산 석탄의 불법 수입에 관여했던 파나마 선적의 '스카이 에인절'호와 시에라리온 선적의 '리치 글로리'호는 20일에도 아무 제약 없이 우리 영해(領海)를 통과했다. 작년 12월 채택된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397호는 제재 위반에 연관된 선박이 영해를 지나갈 경우 이를 '나포, 검색, 억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외교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해당 선박의 재입항 시 수시로 검색했으며 결의 위반 사항은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재입항 당시 제재 위반 행위가 없어 억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2397호는 과거의 제재 위반을 토대로 억류하는 것도 가능케 하고 있다. 불법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또 외교부는 이들 선박이 북한산 석탄을 싣고 인천·포항에 입항했을 당시 즉각 억류하지 않은 것과 관련, "당시에는 선박을 억류토록 하는 결의 2397호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정부가 작년 11월 24일 여수항에 입항한 홍콩 선적의 '라이트하우스 윈모어'호를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유류를 건넨 혐의로 억류했을 당시에도 2397호는 없었다. 다만 한국이 직접 연루된 위반 행위가 아닌 데다, 혐의 자체도 미국이 가장 민감한 대북 유류 이전인 점을 고려해 즉각 억류했었다. 외교 소식통은 "결국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는 정부의 '의지'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0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기 위해 출국했다.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을 만나 비핵화 방향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