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전화 금융 사기) 조직에 통장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통장에 입금된 범죄 피해자의 돈을 몰래 인출했다면 횡령죄에 해당할까? 1·2심은 보이스피싱 조직도 사기 피해금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무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9일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한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지만 사기 피해자에게 돌려줘야 할 돈을 횡령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최모(26)씨는 작년 2월 "통장을 주면 한 달에 300만원을 주겠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제안을 받고 통장과 체크카드를 넘겼다. 하지만 약속된 돈을 받지 못하자 최씨는 진모씨와 짜고 진씨 명의로 통장 2개를 만들어 그중 한 개를 다시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넘겼다. '문자 알림 서비스'를 신청해 통장에 돈이 입금되면 그 돈을 보이스피싱 조직보다 먼저 빼내려는 목적이었다. 실제 며칠 뒤 해당 통장에 613만원이 들어오자 최씨 등은 그중 300만원을 몰래 빼냈다가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금에 대해 어떤 권리도 없고, 최씨 등과 범죄 피해자 사이에 피해금에 대한 위탁 관계가 성립될 수도 없다"며 횡령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포 통장을 빌려준 행위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범죄 피해자가 피해금을 송금한 경우 계좌 명의인은 피해금을 반환해야 하므로 이를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며 "돈을 챙길 뜻으로 그 돈을 인출했다면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했다. 한편 지난 17일 부친상을 당한 김 대법원장은 부산의 빈소를 지키다 이날 서울로 올라와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