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안보 전문가의 강연 동영상을 보았다. 보수 이론가로 알려진 그가 강연한 곳은 '서울대 트루스 포럼'이란 대학생 모임이었다. 강연을 듣는 학생 중에는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머리에 왁스를 발라 단정히 빗어 넘긴 이도 있었다. 대학가에서 "동성애 커밍아웃보다 '나는 보수'라는 커밍아웃이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마당이다. 그만큼 보수가 따돌림받는 분위기에서 대학생들이 이런 강연 모임을 기획했다는 게 신기했다.

▶어제 본지 2면에 보수의 가치를 앞세운 젊은이들이 정치 모임을 만들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서울대 트루스 포럼 같은 모임이 한둘이 아니라는 소식이었다. 찢어진 청바지, 노랗게 염색한 머리 등 외모부터 보수 정치인이나 군복·등산복·선글라스 차림의 보수 집회 참가자들과 달랐다. 이들은 본심은 보수지만 드러내길 꺼리는 '샤이(shy) 보수'와도 다르다. 시장경제, 한미 동맹을 통한 북한 해방 등 보수적 목소리를 분명히 내지만 극우와도 선을 긋는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선거는 '세대 투표' 현상이 강해졌다. 젊을수록 좌파 후보에게 투표하고 나이 들수록 우파 후보를 더 지지하는 것이다. 전교조 교사들의 영향, 청년층에게 팍팍해지는 삶, 좌파 문화의 득세 등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 등장한 2030 '댄디(dandy) 보수'들은 보수적 가치를 토론하고 주장하기를 회피하지 않는다.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으며 컸고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까닭에 "탄핵 촛불 집회 이후 한국 사회가 전체주의로 흐르는 경향에 반감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존 보수의 낡음과 완고함, 극단을 거부한다. 각자 학업과 생업을 갖고 있는 등 과거 386 같은 직업적 운동권과도 삶의 방식이 다르다.

▶유럽에선 프랑스 마크롱(41) 대통령, 오스트리아 쿠르츠(32) 총리 등 30~40대 중도·우파(右派) 정치 지도자가 속속 등장해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반면 한국의 보수 정당에서 젊은이들은 선거 때만 '○○○의 키즈' 소리를 들으며 반짝 영입돼 액세서리 취급 당한다. 보수 정치에서 비전을 찾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댄디 보수' 청년들 중에는 보수 정당을 찾는 대신 독자 정당 결성을 추진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기성 보수 정당이 아니라 '정치 창업'을 모색하는 것은 기존 보수 정당에 희망이 없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