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들어 올 3월 말 국내에도 개봉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여기에는 2045년 컨테이너 빈민촌에 사는 사람들이 가상 세계인 '오아시스'에 접속해 즐기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들은 머리와 손에 디스플레이와 열 감지 촉각 장갑을 각각 착용하고 오아시스에 들어가 모험과 오락의 스릴을 만끽한다.

'일본가상현실협회' 설립자인 스스무 다치 게이오대 교수는 "이번 세기 중반이면 대부분의 사람이 컴퓨터 영상과 현실 세계가 혼재된 사이버 세계에 살 것"이라고 했다.

영화에서처럼 컴퓨터로 만든 가상 세계를 실감 나게 체험하는 '가상현실(VR)'과 현실 세계에 디지털 이미지를 겹쳐 보여주는 '증강현실(AR)'을 넘어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가 상호작용하는 '혼합현실(MR)' 시대가 열린다는 얘기다.

이는 컴퓨터의 시각화 처리 기술, 오감(五感)을 감지하는 센싱 기술, 현실감을 더하는 디스플레이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덕분이다.

에어백과 고주파 진동으로 신체에 크고 작은 감각을 제공하는 ‘포스 재킷’(왼쪽). 오른쪽 사진은 로봇 근육이 장착된 미국 샌디에이고대 연구팀의 스마트 장갑.

지난해 7월 일본 게임사 반다이남코가 도쿄에 오픈한 테마파크 'VR존 신주쿠'는 가상현실의 진수를 보여준다. '마리오 카트' 탑승자는 마치 게임 속에 들어온 듯 허공에 이리저리 손을 뻗어 화면 속 바나나를 던지고 뿅망치를 휘두른다. '드래건볼'에 나오는 필살기 '에네르기파(일종의 뜨거운 장풍)'도 체험할 수 있다.

손과 발, 허리에 센싱 장치를 착용하고 온 힘을 다하면 가상 화면에서 에네르기파가 분출돼 눈앞의 바위가 깨진다. 고야마 준이치로 반다이남코 VR존 총괄은 "낭떠러지에서는 한 발짝도 못 내딛겠다며 절규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올 4월 미국 디즈니가 공개한 '포스 재킷'은 혼합현실(MR)을 구현한 시제품이다. MIT, 카네기멜런대와 협업해 만든 이 재킷은 에어백과 고주파 진동으로 신체에 크고 작은 감각을 제공한다. 재킷을 입고 가상현실 안경을 쓰면 뱀이 몸통을 휘감거나 괴물한테 얻어맞는 등 가상 세계의 다양한 감각을 실제 피부로 확인할 수 있다.

마이클 툴리 UC샌디에이고대 교수팀이 퀄컴과 함께 개발한 스마트 장갑도 흥미롭다. 장갑에 내장된 일종의 로봇 근육이 스프링처럼 반응해 손가락이 움직일 때 힘을 가한다. 사용자가 허공에 대고 피아노를 연주해도 실제로 건반을 누르는 것처럼 몰입하며 촉감을 느낄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이달 15일 전 세계 AR·VR 시장 규모가 2022년에는 1050억달러(약 119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AR이 전자상거래와 광고 시장에 폭넓게 이용되면서 이 시장 규모가 VR 시장보다 6배나 클 것으로 내다봤다. 이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력은 미국에 1년 7개월, 일본에 7개월 이상 뒤처졌다고 평가원은 밝혔다.

미치오 카쿠 뉴욕시립대 교수는 "앞으로 가상현실 안경이 콘택트렌즈만큼 작아질 것"이라며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 있든 마음만 먹으면 한자리에 있는 것처럼 놀고 회의하고 악수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한 예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가상으로 등장해 자신의 손자와 놀아줄 수도 있다. 녹음된 목소리의 패턴을 학습하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고인(故人)의 목소리도 상황에 맞게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