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제(52)씨는 ‘최저임금, 나를 잡아가라’며 집단 회견을 했던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의 공동대표다. 서울 논현동의 한 아파트 상가에서 GS25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매출액에 제품 원가와 가맹점 수수료를 제하면 한 달 수입은 900만원 남짓 됩니다. 여기서 임대료 380만원과 인건비 400만원을 빼야 합니다. 결국 별로 남는 게 없습니다. 저는 하루 13시간 넘게 일합니다. 주 5일제나 주 52시간 근무는 딴 세상 얘기입니다. 편의점을 한 지 26년 됐습니다. 여태껏 가족 모두가 함께 여행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서 동네 편의점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는 처음입니다.

"현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이란 서민의 소득을 늘려줘 소비를 통해 성장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인건비를 더 부담하면서 소득이 줄었습니다. 정부 정책과 반대로 쓰려야 쓸 돈이 없어졌습니다.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봉급이 어느 날 이렇게 대폭 깎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의 정책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한계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는 요즘 '편의점 투사(鬪士)'가 됐지만 원래는 교단에 있어야 될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님도 모두 교감을 지냈다. 하지만 그가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 첫 발령받고 8개월이 됐을 때 불의의 참변이 있었다. 부모님이 음주운전 차량에 들이받혀 사망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26세였다. 아래로는 동생 셋이 있었다.

"제가 동생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교사 봉급으로는 어려웠습니다. 아버님 제자분이 편의점을 권했습니다. 지금은 퇴직자들이 몰려들어 전국에 편의점 숫자만 4만~7만 개 되지만, 그때는 편의점 초창기였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를 꿈꾸다가 장사 일을 하는 게 적성에는 맞았습니까?

"그때도 안 맞았고 지금도 안 맞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먹고사는 문제였습니다. 편의점을 해보면 직원을 구하지 못하거나 갑자기 나가버리면 무조건 본인이 때워야 합니다. 잠잘 때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머리맡에 휴대폰을 두고 생활해야 합니다. 이게 얼마나 스트레스겠습니까. 남들이 쉬는 명절ㆍ연휴에도 문을 열어야 합니다. 부모님 제사를 제시간에 지내지 못했고…, 여태 처갓집에 간 횟수도 손꼽을 정도입니다."

성인제씨는 “희망이 있으면 참을 수 있지만, 갈수록 ‘절망 고문’만 빤히 보인다”라고 말했다.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는 것도 아니고, 겨우 먹고사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어느 직업이고 어느 밥벌이인들 그 속을 들여다보면 힘들지 않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편의점은 24시간 문을 열어야 하니, 신혼 초에도 야간 직원을 구하지 못해 편의점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편의점 제품 창고에 침대를 갖다 놓고 눈 붙이고, 날마다 인스턴트식품을 먹었습니다. 또 어느 기간에는 직원 없이 아내와 맞교대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동생들을 다 분가(分家)시켰고 자녀는 대학에 보냈습니다. 덕분에 먹고살았으니까 감사해야겠지만, 정말 고민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편의점가맹점협회에서 '최저임금, 나를 잡아가라'라며 집단 기자회견을 했을 때 공감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편의점 점주는 그래도 알바생보다 재력(財力)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면 될 일이지'라고 냉소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저희는 배운 게 없어 다른 걸 하고 싶어도 기술이 없습니다. 상품 팔아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사실 대다수 편의점 주인들은 재력이 있는 게 아니라 영세한 서민입니다. 경기가 안 좋아 퇴직자가 많을수록 편의점이 많이 생깁니다. 제게는 '이번 달 직장 그만두는데 편의점 좋은 데 있어?'라고 문의해오는 전화가 많습니다. 편의점은 퇴직금 1억원으로 딱 하기 좋아 보입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음식점처럼 직접 끓이거나 튀기지 않아도 되니까요. 가만히 앉아서 용돈 벌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쉽게 봤다가 투자한 퇴직금을 다 까먹습니다. 이제는 인건비까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내년 최저임금이 10.9% 올라, 아르바이트 시급이 8350원이 되겠군요.

"작년까지만 해도 정부가 하는 일이니 참자고 했는데, 우리 점주들은 벼랑 끝으로 몰렸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직원 1인당 인건비가 월 73만원 올랐습니다. 내년에는 여기에 56만원 더 나갑니다. 편의점 매출은 늘지 않고 오히려 떨어지는데 이걸 무슨 수로 감당하겠습니까. 최저임금위원회의 노동계 대표는 원래 그렇다 쳐도 공익 대표들은 한 번이라도 월급을 줘본 사람들로 구성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후년(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입니다. 오히려 노동계에서는 이번 인상 폭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고 반발하더군요.

"어느 나라에도 이렇지 않을 겁니다. 최저임금 논의에서 감춰진 게 '주휴수당'입니다. 편의점 직원이 일주일에 5일(총 15시간)을 계속 일하면 하루치를 더 주게 되어 있습니다. 주휴수당을 산입하면 내년 최저 시급(時給)은 실제로는 1만원이 넘었습니다. 게다가 직원에게 4대 보험을 들어줘야 합니다. 그걸 안 하면 세무서에서 추징이 들어옵니다."

―그렇지만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는 '몇 푼 안 되는 우리 시급(時給)을 못 올리게 하느냐'고 생각하겠지요. 실제 대학생들의 비난 댓글이 많이 있더군요. 노동계나 일부 대학생은 편의점 주인을 '악덕 자본가'처럼 봅니다.

"우리가 시급 인상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지불할 형편이 못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지급할 수 있도록 먼저 만들어달라는 겁니다. 아주 목이 좋은 곳에 있는 편의점의 점주를 빼면, 대부분 편의점 점주의 올해 평균 수입은 월 150만원을 못 넘습니다. '점주를 그만두고 차라리 알바를 뛰겠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옵니다. 인건비를 감당 못해 아르바이트를 내보내고 부부가 12시간씩 맞교대하는 편의점이 늘어났습니다."

―아예 시급을 떼먹거나 임금 체불을 하는 점주들도 있지요. 부모 된 마음에서는 알바생의 근로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안쓰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대학생인 제 자녀도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아이들이 정상적인 시급을 못 받아오면 저도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고용자가 줄 수 있는 여력이 있느냐도 중요합니다. 편의점 주인도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아르바이트생 나이의 자식들도 있을 겁니다. 현 정부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우리 점주를 자식 같은 아르바이트생들과 대립 관계로 만들고 있습니다."

―편의점 점주들은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돈 몇 푼 올려주는 것에는 집단반발하고, 실제 수익 구조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임대료를 놓고 건물주에게 대들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건물주에게 '월세 못 내겠다. 깎아달라'고 하면 '나가라'고 합니다. 쫓겨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실을 모르고…, 자기가 장사를 해보면 그런 말을 못합니다."

―대기업 본사와의 가맹점 수수료를 조정하면 아르바이트 직원의 시급을 올려줄 여력이 생기지 않나요?

"대기업 본사가 편의점 수익의 35%를 가져간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세상 바뀐 줄 모르고 그런 주장을 합니다. 본사와의 계약 조건은 편의점마다 다르고 지금은 합리적인 선에서 협상합니다. 본사가 일방적으로 갑질을 할 수 없습니다. 올해 최저임금이 인상됐을 때 본사로부터 20만~50만원가량의 전기료를 받아냈습니다."

―그런 식으로 조정하면 되지, 시급을 얼마 더 올린 게 편의점 수익 구조에서 그렇게 결정적입니까?

"본사가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편의점 지출에서 인건비가 50%를 차지합니다."

―한 달 전인가요,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습니다만.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동자만 보이고, 우리 같은 영세 자영업자는 국민이 아닙니까. '시급을 얼마 올려야 하니 당신들에게 세금이나 카드 수수료 등의 제도를 이렇게 할 테니 좀 참아달라'고 설득했으면 이런 식으로 서로 대립하지 않았을 겁니다. 올해 최저임금이 오르자 편의점마다 알바생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구인 광고를 내면 한 달 동안 한 통도 못 받았지만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학생들이 넘쳐납니다."

―청년 실업률이 18년 만에 최악이라는데, 지금 같은 아르바이트생의 일자리 축소도 포함되겠군요.

"과거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거의 전부 학생이었습니다. 지금은 전업주부들이 나와 일합니다."

―왜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인적 구성이 바뀌고 있는 겁니까?

"학생들을 잘 안 뽑으려고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학생들이 싫어하겠지만, 학생들은 근무시간에 휴대폰을 보고 있습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는데도 하루 이틀 일하다가 '오늘 아파서 못 나가요'라고 문자로 알린 뒤 연락을 끊습니다. 대부분 두 달을 못 넘깁니다. 돈이 좀 모이면 거짓 이유를 대고 안 나옵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면 급하게 사람을 구하거나 집안 식구 중 누군가가 메워야 합니다."

―내년도 최저임금까지 결정된 상황에서 어떤 해답이 있습니까?

“좋아지게 될 희망이 있으면 속는 셈치고 참을 수 있지만, 이는 갈수록 빤히 보이는 ‘절망 고문’입니다. 본사와 계약 기간이 있어 위약금 때문에 문 닫을 수도 없고 정말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다른 벼랑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면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항할 수밖에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