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삼성타운. 건물 세 동 가운데 삼성물산 건물이 매각된다.

2년 전 작고한 건축가 김석철 선생은 "건축은 수학과 논리학과 미학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건축가라면 도시의 역사·지리·사회적 소명에 투철해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건물은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건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하였다. 업종에 따라 다르나 본사 사옥은 접근성 말고도 역사적·인문적 의미 부여가 가능해야 한다. 건물이 들어섰을 때 그 주변을 아울러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하며, 해당 업종에 맞는 영기(靈氣)가 있어야 한다. 해방 이후 대표적 건축가 김수근과 김중업의 건축을 계승한 김석철 선생의 지론이었다.

동아시아 주요 기업 사옥들은 풍수를 무시하지 않는다. 기업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주는 것에 서구인이 말하는 '합리적 의사결정' 이외에 다른 내재적 요인(딥 팩터·deep factor)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딥 팩터는 그 나라의 지리·기후·문화·역사 등에 의해 형성된다. 특히 지리와 문화적 전통은 변하지 않는 핵심 딥 팩터라는 게 대니얼 앨트먼(뉴욕대 교수)의 주장이다.

세계에서 둘째로 높은 중국 상하이타워(632m)는 '비룡상천(飛龍上天)'을 형상화하였다. 용의 나라 중국과 자기 기업이 세계 최고가 되라는 염원이 반영되었다. 부근에 있는 88층의 진마오(金茂) 빌딩 역시 중국인이 좋아하는 숫자 8과 색(황금색)이 오롯이 반영된 건물이다. 홍콩의 중국은행(Bank of China) 건물은 우후춘순(雨後春筍), 즉 봄비 내린 뒤 죽순을 형상화하였다. 그런 성장을 염원한 것이다. 문외한도 외형만 보면 그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잠실의 제2롯데월드는 붓 모양을 형상화하였는데, 왕희지의 필진도(筆陣圖)에서 유래한다. 글씨를 쓰는 데 필요한 네 가지 보물[文房四寶] 가운데에서도 붓이 으뜸이다. 중국계 관광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자국의 딥 팩터를 반영한 사옥들도 적지 않으나 모든 사옥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10여 년 전 '삼성본사의 서초동 시대'를 알리는 언론 보도가 장안의 화제였다. '서초동에 삼성타운이 들어서며, 새로운 삼성 시대가 열린다'느니 '삼성타운은 21세기의 선진화된 삼성 브랜드를 반영한다' 같은 보도였다. 덩달아 풍수술사들도 모든 물이 모여드는 취면수(聚面水)의 길지이기에 재물이 번창할 것이라고 언론에 아첨하였다.

그런데 최근 이곳 세 동 건물 가운데 삼성물산 건물을 매각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에 대해 여러 소문이 돈다. '사옥을 이곳으로 옮기고 나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정부의 금융 규제 강화로 자산 운용 방식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재용 승계 및 이재용의 부동산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개국자는 1000년을 염원하고, 창업자는 500년을 꿈꾼다고 하였다. 개국과 창업을 이어가고자 할 때 저마다 고유한 전통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전통 사상을 존중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손자 대에 들어와 새로운 문화로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으로 이를 알 수 있는가? 서초동에 들어섰던 세 동 건물 모양에서였다. 전통을 무시한 첨단 양식이다. 세 동 건물의 특징을 3글자로 표현하면 '난(亂)·충(衝)·압(壓)'이다. 어디가 정문인지 혼란스러워 초보자가 목적지를 쉽게 찾지 못한다[亂]. 세 동의 건물 모서리가 서로를 찌른다[衝]. 그 옆을 지나가다 보면 건물이 사람을 내리누를 것 같다[壓]. 풍수 고전 '탁옥부'는 이를 '택병(宅病)'이라 하였다. 10년 만에 서초를 떠나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