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가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세월호 사건 대응에 관여하는 등 월권이나 일탈 행위를 해온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도 군 바깥에서 민간 정보를 수집하거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각종 동향 정보를 보고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군 안팎에선 "역대 정권이 각기 입맛에 맞게 기무사를 운영하다 보니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세월호, 역사 교과서 등 현안마다 관여

심각 - 송영무 국방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기무사는 군사 보안 및 군 방첩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군 관련 첩보 수집과 군사기밀 누설 등 범죄 수사, 사이버전 대비 등도 임무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업무 범위에서 벗어난 사례들이 잇따라 노출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기무사가 세월호 선체 인양 반대 여론을 조성하고, 인양 대신 '해상 추모공원'을 조성하는 방안을 청와대에 건의한 기무사 문건이 지난 11일 언론에 보도됐다. 기무사는 당시 지지율이 떨어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위해 'PI(President Identity·대통령 이미지) 제고 방안'이라는 문건도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무사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관련 대국민 담화 때 감성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희생자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문건 보고 닷새 뒤 눈물을 흘리며 담화를 발표했다.

이달 초 '국방 사이버 댓글 사건 조사 TF'도 기무사의 정치 관여 의혹을 제기했다. 기무사는 2009~2013년 '군 통수권자 보필' '대통령 국정 운영 지원' 등을 목적으로 사이버전담관(일명 스파르타)을 선발했다.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용산 참사, 4대 강 사업, 반값 등록금, 한·미 FTA, 총선, 대선 등 이슈마다 댓글을 달고 조회 수를 올리는 등 여론 조작 활동을 했다고 TF는 밝혔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 채택 등 정치 현안에 개입하고, 전교조 관련 교육공무원의 인적 쇄신 명단을 청와대에 보고한 사례도 있었다.

◇YS 때 기무사 축소했다 원위치

기무사는 보안사령부 시절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사찰 대상 민간인 목록이 담긴 디스크를 들고 탈영한 뒤 그 내용을 공개해 큰 파문이 일었다. 당시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가 교체됐고 기무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보안사는 1979년 12·12 당시엔 사실상 군사 반란의 사령탑이었다.

기무사의 월권, 일탈 행위는 역대 정권이 초래하거나 조장한 측면이 크다. 한 예비역 고위 장성은 "기무사령관 등 기무사 핵심 간부들을 국방장관이 아닌 청와대의 의중에 맞춰 임명했다"며 "군을 견제하고 장악하는 도구로 기무사를 활용해 온 것이 문제"라고 했다. 현 정부 들어서도 송영무 국방장관이 추천한 인물 대신 청와대가 낙점한 장성이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역대 정권은 출범할 때마다 기무사 개혁을 내세웠지만 대부분 유야무야됐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기무사가 적폐 청산 사령탑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계속 보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는 기무사 댓글 사건과 계엄령·세월호 문건 등을 내세워 해체 수준의 기무사 개혁을 추진 중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가 기무사를 정말 개혁하려면 과도한 청와대 보고 등 과거 관행부터 깰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리얼미터의 지난 11일 설문 조사에서는 '(기무사를) 존치시키되 기존 정보 업무를 방첩이나 대테러로 전면 개혁해야 한다'는 응답이 44.3%,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34.7%로 나타났다.

☞국군기무사령부

국방부 직할 부대로 군사 정보 수집 및 보안, 방첩, 군내 범죄 수사 업무를 수행한다. 조선경비대 육군정보국 정보처 특별조사과(1948년)가 모체다. 1977년 육군 보안사령부, 해군 방첩대, 공군 특별수사대를 국군보안사령부로 통합했다. 보안사는 12·12 군사반란 관여 등 정치 개입, 민간인 사찰 등으로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