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재기해' 구호에 시위대 내분
"도 넘었다" VS "문제 제기"
시위 지켜본 정현백 장관에게도 불똥

주말 도심에서 열린 ‘여성차별 반대집회’에서 나온 대통령 비판 구호를 놓고, 시위 참가자들의 의견이 갈라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재기해”라는 구호가 지나쳤다는 쪽과 문제 제기도 못 하느냐는 의견이 맞서는 것이다.

‘재기해’는 반(反)페미니즘 활동을 벌이던 고(故)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투신해 죽으라” “쓸모없이 목숨을 버리라”는 의미로 통한다. 성 대표가 2013년 ‘한강 투신’을 예고한 뒤 실제로 서울 마포대교에서 투신했다가 결국 숨진 것을 희화화한 것이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3차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에서 시위대 측이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가운데 앉아있는 여성이 몸에 ‘페미 대통령’이라는 띠를 두르고 문 대통령의 성을 뒤집은 ‘곰’을 얼굴에 갖다 대고 있다.

◇문 대통령 투신을 형상화한 '곰'피켓, "재기해" 구호까지 등장
"문재인 재기해" 구호가 등장한 것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서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한 참가자는 ‘곰’이라고 적힌 종이 쪽지를 들고 무대 위에 섰다. ‘곰’은 문 대통령의 성인 ‘문’자를 아래위로 뒤집은 것으로,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문 대통령을 조롱할 때 쓰는 표현이다. ‘문(文)’대통령의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한 글자 탓에 일부는 ‘투신’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날 ‘곰’ 글자로 얼굴을 가린 한 여성은 문 대통령의 말투를 흉내내면서 조롱했다.

같은 시간 무대 아래에서 문제의 “문재인 재기해”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시위 주최 측은 “‘재기해’의 재기는 (조롱의 뜻이 아니라) 사전적 의미”라고 설명했다. ‘역량을 모아 다시 일어선다’는 재기(再起)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이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페미 공약 걸어놓고 당선되니 잊은 것이냐” “자칭 페미 대통령 문재인은 지금 당장 응답하라”는 구호도 등장했다.

3차 시위에 등장한 구호문.

문 대통령이 시위대 일부의 표적이 된 것은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홍익대 몰래카메라(몰카) 사건은 편파수사가 아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는 홍대 몰카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사건을 해결했다는 혜화역 집회 참가자들의 의혹을 반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현장에서 시위 지켜본 정현백 여가부 장관에게도 불똥
시위대 한 켠에서는 "도가 지나치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참가자는 "'문재인 퍼포먼스'를 못 참고 자리를 떴다. 진짜 이건 아닌 것 같다"라고 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도 "순수한 여성들을 위한 시위가 아니라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 "무리수다. 지속 가능한 시위를 위해 정신차려야 한다" 등의 반발이 나오고 있다.

윤태곤 정치평론가는 “단순하게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율이 높고 탄탄한 여성 지지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퍼포먼스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쪽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퍼포먼스’가 논란이 되자 시위 주최 측은 “대통령 비하가 아니라 문제 제기였다”고 진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문제가 된 “문재인 재기해”도 공식 구호가 아니라, 시위대 일부가 자의적으로 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일 열린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시위’에는 1·2차 시위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몰렸다.

주최 측 해명에도 불구하고 당시 현장에서 시위를 지켜본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대통령 죽음을 암시하는 극단적 구호가 등장한 집회에 장관이 참석한 것은 옳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정 장관 경질을 요구하는 게시글도 올라왔다. 글쓴이는 "반정부 선동에 동조하는 정 장관은 현 정부의 이념과 정책 방향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에는 현재 4만명 이상이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