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에너지와 기후변화를 다룬 '위키드 프라블럼'이라는 책을 썼다. '위키드(wicked)'는 '사악하다' '짓궂다' 정도의 뜻을 함축한다. 그해 1월 세계 곳곳을 덮친 한파(寒波)가 그런 예다. 국내에선 한파 경보가 발령됐고, 아열대인 중국 광저우에선 눈이 내렸고, 미국에선 '스노마겟돈(snowmageddon)'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당시 한파는 북극이 더워지는 바람에 북반구 제트기류가 헐렁해지면서 찬 공기가 중위도까지 내려온 탓이었다. 온난화가 한파를 몰고 온 것이다.

▶유럽과 미국이 온난화를 막겠다며 야자 기름이나 옥수수 에탄올을 연료로 쓰는 '바이오 에너지' 장려책을 동원한 것은 되레 온난화를 가속했다. 밀림을 베어내 야자 플랜테이션을 조성하거나 옥수수에서 에탄올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온실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확인됐다. 역시 '위키드'한 결과였다.

▶경북의 태양광 단지가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사진이 어제 아침 신문에 보도됐다. 산비탈을 깎은 후 나무를 베어내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는데 태풍 비에 무너져내렸다. 환경을 살리자고 태양광을 권장한 것인데 환경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요즘 저수지·호수에 설치하는 수상(水上) 태양광도 태풍에 직격당하면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2015년 8월 경주 방폐장 1단계 시설이 완공됐을 때 책임자가 '세계적 첨단 안전 시설'이라며 자랑하는 걸 듣고 쓴웃음이 나왔다. 경주 방폐장에 보관하는 중·저준위 폐기물은 그렇게 위험한 물질이 아니다. 그걸 6000억원을 들여 4㎞ 동굴을 파고 들어가 지하에 보관하는 자체가 과잉이다. 그 바람에 지하수맥이 잘려나갔고 지하수가 방폐장으로 스며들 위험을 자초하고 말았다. 애당초 표층 처분을 한 후 눈으로 보면서 관리했더라면 훨씬 안전했을 것이다. 안전을 명분으로 하는 탈(脫)원전 정책도 기술 인력의 맥을 끊게 되면서 도리어 기존 원전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는 지적이 많다.

▶어떤 정책이 당초 목표와 반대의 역설적 결과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이 내다볼 수 없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에너지 분야에서 특히 불확실한 것은 기술 진화의 방향이다. 미래가 불확실한데 어느 한쪽에 올인하는 것은 무모하다. 아직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는 은탄환(silver bullet) 기술은 없다. 잠재력 있는 여러 기술을 적절히 조합한 산탄총(散彈銃) 전략이 현명하다. 도그마 같은 주관적 확신에 국가 운명을 맡길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