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다가온다. 그는 바람을 지배하는 남자. 그가 저벅저벅 발걸음을 내디딜수록, 그의 숨결이 점점 뜨겁게 다가올수록 이곳의 공기는 후끈 달아오른다. '후방주의' 레이더를 백날 가동해봤자 소용없다. 조용히 주문을 외운다. '입 열지 마' '팔 들지 마' '가까이 오지 마….'

하지만 이미 게임 셋(game set). 그의 움직임은 스텔스기였으나 그가 지나간 길은 사드(THAAD)였다. 양팔 너비 그 반경 너머 공중에서부터 정확하게 요격. 머리카락을 스치는 살풋한 비누 냄새는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걸까. 닿는 곳곳 초토화하는 '걸어 다니는 냄새 폭탄' 전설은 그렇게 탄생했다.

덥고 습하고 눅눅한 여름이 다가오면서 주변에 나는 불쾌한 냄새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땀 냄새, 음식 냄새, 입 냄새, 머리 냄새, 발 냄새…. 전신의 모든 모공으로 발산하는 각종 냄새에 공중에서도 잠수하는 듯한 신기를 발휘해야 한다. 고도로 축적된 담배 쩐 내에 진득한 믹스 커피라도 한 잔 거나하게 들이켠 뒤 말이라도 걸라치면 이미 시야는 아득해진다. 안 씻고, 안 빨고, 빨아도 제대로 안 말려 입으며 쓰레기 위에 쓰레기를 얹고 다니는 '불결파'를 견디는 것만도 녹다운. 향수를 드럼통으로 부은 듯 덕지덕지 뿌리고 바르고 또 뿌린 이들까지 만나면 두통, 치통에 없는 통증이란 통증은 다 일어날 것만 같다.

friday가 25일 SM C&C의 설문 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를 통해 전국 성인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 동료나 주변인에게 불쾌한 냄새를 맡았다'는 이들은 전체 76.5%에 달했다. 전체 60% 정도가 불쾌함을 표해야 하나 고민하지만 '실제로 말했다'는 이들은 29%에 그쳤다. 이유는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56.6%) '나도 민폐일지 몰라서'(16.4%) '그냥 참는다'(15.4%) '그 사람이 모르는 것 같아'(11.6%)로 알아도 모른 척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자기 냄새는 스스로 둔감해져 잘 못 맡는다 하니, 냄새로 이어지는 민폐의 고리는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를 뫼비우스의 띠 같기만 하다.

해외에선 냄새를 업무 방해로 규정하는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다. 캐나다는 상당수 회사나 관공서에서 '무향 정책(scent-free policy)'을 도입해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체취나 과도한 향수 사용을 되도록 삼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냄새도 일종의 폭력이라는 '스메하라(スメハラ·smell harassment)' 문제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향기도 에티켓이라는 '향티켓'도 급부상하고 있다. 취업 정보 사이트 '사람인'의 임민욱 팀장은 "냄새가 그 사람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평판 관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또 다가온다. 예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천진한 얼굴로 친구 얘기라며 한참을 떠든다. "내 친구가 애인보다 더 애지중지하던 담배를 20년 만에 끊었다는데 말이야. 그 비결이 뭔 줄 알아? 딸아이한테 매일 뽀뽀를 퍼부어도 모자란다던 '딸 바보' 중에 딸 바보였는데, 아 글쎄 그 친구에게 이제 갓 세 살 된 애가 내던진 제대로 된 첫 문장이 이랬다는 거야. '아빠! 입에서 똥 냄새나.' 으하하하하."

거울이라도 들려줘야 할까. 눈을 딱 감고 주먹을 살포시 쥐며 심호흡 뒤 '이제는 말해야겠다' 굳게 마음먹는 순간, 그가 침을 튀기며 얼굴을 확 들이민다. "나, 냄새나?"

“플뢰르 드 로카이유(fluer de Rocaille) 향수를 뿌렸군요!”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앞이 안 보이는 대령 역의 알 파치노는 탱고를 추기 전 이렇게 향수 이름을 외치며 상대의 외모를 정확히 유추해 낸다. 플뢰르 드 로카이유는 ‘바위투성이 정원에 핀 꽃’이라는 뜻으로 사랑에 처음 눈뜬다는 의미. 냉혈한이었던 알 파치노가 사랑에 개안(開眼)했던 것처럼 이젠 막힌 코를 열고 향에 개비(開鼻)하는 시대가 왔다.

“나는 네가 뭘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지난여름에 무얼 했는지 아는 게 공포 ‘영화’ 속 테마라면 실생활 속 진짜 공포는 먹으면 먹는 대로 풍기는 냄새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조사한 바로는 이성 동료의 냄새 중 가장 참기 어려운 건 남녀 모두 ‘옷에 밴 담배 냄새’가 1위였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냄새가 안 난다고는 하지만 ‘쑥뜸 냄새, 옥수수수염이나 콩나물 비린내가 난다’고 목소리 높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다음 여성 응답자가 가장 싫어하는 남성 동료의 냄새로 옷에 밴 땀 냄새(23.5%)와 고기와 술 냄새(15.6%)가 꼽혔다.

한국 특유의 회식 문화로 인한 냄새 유발은 한국형 가전도 만들어 냈다. 의류 관리기인 LG전자 트롬 스타일러의 개발 계기는 회식 냄새였다. 개발팀은 사무실 내에서 삼겹살을 굽거나 일부러 담배 냄새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옷에 냄새를 묻혔다. 개발팀에서 꼽는 최악의 냄새는 고등어 굽는 냄새. 빨리 배면서도 가장 빼기 어려운 데다 냄새도 오래갔다.

주위엔 고통이지만 나는 모를 수 있다는 게 냄새의 역설이다. 냄새를 풍기는 것도, 냄새를 맡는 것도 개인차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냄새에 더 민감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뇌에서 후각을 인지하는 세포가 남자보다 43% 더 많다고 한다. 같은 냄새라도 사람에 따라 더 민감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찌든 내뿐만 아니다. 누군가에겐 ‘분 냄새’라며 에로틱하고 관능적으로 느껴지는 장미 향이 다른 이에겐 싸구려 양초를 씹은 것처럼 역하게 느껴질 수 있고, 여름 향수 하면 생각나는 바다 내음의 상쾌한 아쿠아 계열 향이 자기에겐 물미역에 절인 오이 같다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인사 담당자, 냄새 관리 교육도

동료의 냄새에 고통받는 직장인들이 많지만 대놓고 불쾌함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이제 악취에 현명하게 처신하는 것도 직장 생활 노하우에 들어간다.

“체취를 지적하는 건 일종의 차별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상대가 오해하지 않게 부드럽게 돌려 말하는 것이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땀이 많이 나는 듯하니 잠깐 세수하며 머리 식혀라’처럼요. 정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상사가 비밀스럽게 따로 불러서 살짝 주의를 주는 것이지요. 자칫하면 사내 왕따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냄새 관리는 서로 조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코칭 전문 회사인 CMO 캠퍼스의 김현주 파트너의 제안이다. 기업 내 업무 불만 등을 조사하면 ‘동료의 냄새 때문에 힘들다’ 같이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일이 의외로 부서 단합을 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만의 얘기가 아니다. 해외에서는 사내 HR(인사관리)팀에서 직원 이미지 교육에 냄새를 포함하기도 한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카를라 밀러는 자신의 상담 코너를 통해 “직원들의 냄새(stink) 관리는 HR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처리하는 업무 중 하나”라면서 “충분히 교육받은 전문가가 없다면 직속 상사들이 ‘냄새 관리도 매력 자원’이라는 걸 알려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위기관리만큼 중요한 게 냄새 관리라는 설명이다. friday의 최근 설문 조사에서도 ‘좋은 향이 나는 이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의견이 81%에 달했다.

일본의 냄새 맡는 로봇 ‘하나짱’. 독한 발냄새를 맡으면 기절한다.

일본에선 향기도 에티켓이라는 ‘향티켓’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향티켓을 지키기 위한 기계들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일본의 코니카 미놀타가 내놓아 인기를 끈 기기 ‘쿤쿤 보디’는 냄새 원인이 되는 성분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어 앱으로 냄새 상태를 전송한다. ‘식물성 음식을 섭취해 장 환경을 조절하라’ ‘데오도란트(땀 억제제)를 쓸 때!’ 같은 조언을 한다. 일본의 발 냄새 알림이 로봇 강아지인 ‘하나짱’은 뽈뽈뽈뽈 돌아다니면서 발 냄새를 맡다가 지독한 사람 앞에서 기절한다.

전용 향 있는 서점·영화관

사람 냄새만큼 고역인 건 엘리베이터같이 밀폐된 공간 속 냄새다. 택시 문을 여는 순간 코를 막았던 경험이 있는지. 한 주한 외국인 외교관은 임기를 마치며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을 떠나는 건 싫지만 택시 냄새와 이별하는 건 다행”이라고 쓴소리했다. 실제로 윤진하 연세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팀이 지난해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택시 승객 10명 중 8명이 담배 냄새 때문에 불쾌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반대로 좋은 향은 사람을 끌어모으기도 한다. 서울 독립문 근처 옛 기와집을 보존한 돈의문 박물관 마을의 경우 그윽한 나무 향이 밴 한옥 냄새를 찾아오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기획자인 한금현 박사는 “요리연구가인 나카가와 히데코의 요리 교실, 음식 전문가인 이욱정 PD의 촬영장, 입주 작가인 글 쓰는 목수 김윤관의 목공 전시로도 손님들이 하나둘 이어졌지만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나무 향 때문에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마을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식 레스토랑 가온은 식당 문을 열기 전 입구에서 매화나무 위에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침향을 올려 향을 피운다.

최근 들어선 공간을 떠올리게 하는 시그니처(전용) 향을 개발하기도 한다. 시각·청각이 단기 기억인데 반해 후각이 장기 기억이라는 데 주목한 것이다. 교보문고가 내놓은 ‘책향(The Scent of PAGE)’은 맡는 즉시 ‘아, 교보 향!’이라고 외치게 되는 향이다. 고객들에게 서점에서의 경험을 오래 기억하도록 향기를 이용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울창한 숲에서 나는 향을 재현하기 위해 시트러스, 피톤치드, 허브, 천연 소나무 오일을 조합했다. 지난달 선보인 지 한 달 만에 매진되는 등 큰 인기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집에서 서점에 온 것처럼 책을 읽고 싶게 하는 환경을 준다는 고객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메가박스도 프리미엄 상영관 ‘더 부티크’ 전용 향이 인기를 끌면서 영화관 최초로 자체 향인 ‘가든 오브 더 부티크’를 출시했다.

교보문고에서 특유의 책 냄새로 만든 향수 ‘책향’.

어릴 땐 어려서, 나이 들면 나이 들어 나는 냄새

체취는 매력뿐만 아니라 몸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리트머스종이다. 구취(口臭)는 입안과 위 등 속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고, 발 냄새는 땀이 세균으로 분해돼 생기는 이소발레릭산 때문에 생긴다. 나이가 냄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미국 유명 학술지인 ‘피부학 탐구 저널’에 따르면 나이 들면 생기는 특유의 ‘노인내’의 원인이 2-노네랄(Nonenal)이란 체내 물질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 일본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이 물질은 40세 이후 몸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나이 들면 어쩔 수 없이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청소년기 남성들이라면 한 번쯤 들었을 ‘총각 냄새’는 남성호르몬이 많은 데다 피지 분비가 활발해 나는 냄새다. 특히 두피에 피지선이 많아 곰팡이와 섞이면서 하수구에 잠시 들어갔다 온 듯한 퀴퀴한 냄새가 배는 것이다. 매일 샤워를 해서 피부를 덮는 박테리아를 줄이는 게 방법이다.

카펫이나 각종 시트처럼 냄새를 오래 품은 것들을 제대로 청소도 없이 냄새를 묻어 놓으면 악취 폭탄이 될 수밖에 없다. 섬유 관리 전문 제품인 런드레스의 고인준 대표는 “최근에 향기 레이어드(겹치는 것)가 인기를 끌긴 하지만 서로 소재나 성분이 다른 제품을 마구 겹쳐 뿌리면 냄새가 충돌할 수 있다”며 “같은 시트러스(레몬 향 같은 상큼한 계열) 향이라고 해도 향 조합이 달라서 잘못 섞이면 오히려 싸구려 향이 날 수도 있다”고 했다. 냄새를 좋게 한다고 각종 향을 뿌려댄다고 나아지는 건 아니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