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청은 작년 10월 신촌 일대에 일회용컵 분리수거함 세 개를 설치했다. 높이 1m가량 테이크아웃 컵 모양의 이 수거함은 먹다 남은 음료는 철(鐵)거름망을 끼운 구멍에, 컵은 빨대 모양 투입구에 분리해서 넣도록 설계됐다. 행인들이 테이크아웃 음료를 들고 다니다 길거리에 마구 버려 거리가 더러워지자 음료와 컵을 따로 버리게 하면 도시 미관도 살고 일회용컵 재활용도 쉬워질 것으로 보고 개당 150만원씩 들여 설치한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음료 따로, 컵 따로' 분리해서 투입할 것이라는 서대문구청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지난 11일 신촌 유플렉스 앞 수거함엔 남은 음료를 버려야 할 철망에 광고 전단, 담배꽁초, 영수증 같은 쓰레기가 쌓였다. 음료가 든 컵을 비우지 않고 빨대 모양 투입구에 통째로 버리는 행인도 보였다.

"분리해 버려주세요" 했더니… 버림받았다 - 대구 중구 동성로에 음료 따로, 컵 따로 버릴 수 있도록 만든‘테이크아웃 컵 전용 수거함’이 거대한 쓰레기더미로 변했다. 먹다 남은 음료를 수거하는 공간에 음식 쓰레기(위 사진 점선)가 들어 있거나 아예 쓰레기가 음료 투입구를 막고 수거함 주변이 쓰레기장처럼 변해 버렸다(아래 사진). 2016년 이 이 수거함을 설치한 대구 중구청은 이런 현상이 지속되자 지난 20일 결국 수거함을 모두 철거했다.

이에 구청 측은 올 1월엔 음식 쓰레기 투입을 막기 위해 거름망을 아예 용접까지 했다. 그러자 이번엔 음료 투입구에 음식물, 담배꽁초 등이 쌓이면서 거름망을 아예 막아버려 남은 음료를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없는 현상까지 빚어졌다. 구청은 결국 '역부족'이라는 결론을 내고 8개월 만인 지난 22일 수거함을 모두 철거했다. 본지 취재 결과 비단 신촌 수거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구 중구청이 2016년 동성로 일대 세 곳에 설치한 분리수거함들도 지난 20일 모두 철거됐다.

수거함 설치부터 철거까지 지난 8개월간 서울 서대문구청은 신촌 일대 수거함 관리에 정성을 기울였다. 수거함 설치 한 달쯤 뒤부터 수거함을 타고 흘러내린 음료가 주변 바닥을 더럽힌 흔적이 발견됐다. '음료를 버리는 수거함 구멍이 좁아서 시민들이 제대로 버리기에 불편했을 것'으로 여긴 구청 측은 곧장 음료 투입구를 기존의 두 배인 지름 약 15㎝로 넓혔다. 시민들이 남은 음료를 투입구에 쉽게 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넓어진 구멍으로 온갖 쓰레기가 더 투입됐다. 라면 찌꺼기, 담배꽁초가 나오고 "취객들이 투입구에 구토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구청 측은 "이런 이물질을 치우는 일은 환경미화원 두 명의 매일 하루 첫 업무였다"고 했다. 이물질을 더 잘 걸러내도록 거름망을 더 촘촘한 것으로 바꿔, 투입 구멍 속 더 깊숙한 자리로 위치를 바꾸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몇몇 시민이 거름망을 떼어 내고 큼직한 음식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 바람에 수거함 안에 쌓인 쓰레기가 호스로 연결된 배수 통로를 막았다. 투입구에 버린 음료가 호스를 타고 수거함 바로 옆 하수구로 흘러드는 게 아니라 수거함 밖으로 흘러나와 주변을 더럽힌 것이다. 결국 구청은 올 1월 거름망을 떼지 못하게 수거함 본체에 거름망을 용접하는 방식으로 고정해야 했다. 구청 측은 "그렇게 해도 수거함 음료 투입구에 음식쓰레기나 일반 쓰레기 등을 두고 가는 경우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시민들이 음료와 일회용컵을 분리 배출하고 싶어도 어디에 버릴지 헷갈릴 수 있다는 생각에 올 3월엔 '음료 컵은 저에게' '남은 음료(얼음)는 여기에' 스티커를 기존보다 더 크게 제작해 붙였다. 구청 직원들이 신촌 주변에 출장 갈 때마다 직접 수거함 주변을 치우기도 했다. 그러나 수거함에 쌓인 쓰레기는 여전했다. 지난 22일 구청은 결국 수거함 세 개를 모두 철거했다. 여름이 다가오자 "수거함에 쌓인 쓰레기에서 악취가 난다"는 민원이 들어오고, 가뜩이나 관리가 어려운데 월드컵 거리 응원으로 더 많은 쓰레기가 나오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구청 관계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했는데 아쉬운 결과"고 말했다.

대구 중구청도 같은 경험을 겪었다. 2016년 동성로 3개소에 설치한 일회용 컵 수거함을 지난 20일 철거했다. 음료를 버리는 투입구에 일회용 컵이 수북이 쌓이고, 컵 수거함에도 빈 컵이 아닌 음료가 든 컵들이 그대로 쌓이는 경우가 많아 분리 수거함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음료를 버리는 구멍이 일회용 컵으로 막혀 있거나 음료가 담긴 컵들이 그대로 버려졌다고 한다.

구청 측은 "종량제 쓰레기봉투가 수거함 근처에 쌓이고, 깨진 술병까지 버려졌다"고 했다.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설치한 수거함이 오히려 쓰레기 투척장처럼 바뀌었다는 것이다. 급기야 작년 10월 수거함 주변에 일반 쓰레기통을 새로 설치했지만, 그래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한다. 구청 관계자는 "거의 매일 음료수거함에 각종 음식물, 담배꽁초가 섞여 있었다. 일회용 컵 수거함 전담 인력까지 배치했지만 관리하기가 도저히 어려웠다"고 했다.

광주 동구에도 수거함이 세 곳에 설치돼 있다. 수거함만을 관리하는 직원을 따로 고용해 주말마다 수거함 청소를 하지만 "음료와 컵이 분리가 안 돼 환경 미화원들이 매일 아침 수거함에 든 쓰레기를 치운다. 몰래 버린 가정집 재활용 쓰레기도 들어 있다"고 구청 측은 전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레기를 잘 버리고, 제대로 버리는 시민 행동이 필요하다"면서 "자기 자신이 지역의 주인이라는 책임 있는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박은호 차장, 채성진 기자, 김정훈 기자, 김충령 기자, 김효인 기자, 이동휘 기자, 손호영 기자, 허상우 기자, 이영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