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릴 예정이던 규제 혁신 점검회의가 회의 3시간 전에 '내용 미흡'을 이유로 연기됐다. 각 부처가 준비한 보고안(案)에 대해 이낙연 총리가 "민간 눈높이에 비해 미흡하다"며 회의 연기를 건의했고 문 대통령이 "나도 답답하다"며 수용했다고 한다. 회의를 열 수 없을 만큼 규제 개혁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을 대통령과 총리까지 인정한 것이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이 정부 들어 1년 동안 '소득 주도 성장'만 독주했을 뿐 규제 개혁 과제들은 무엇 하나 이루어진 것이 없다.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가 전 세계에서 활약하지만 한국에선 운수사업법의 금지 조항에 막혀있다. 중국에서 1억명이 이용하는 원격진료도 비(非)대면 진료를 막은 의료법 때문에 원천 금지돼 있다.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중 57곳이 한국에선 규제에 막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한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신산업 규제뿐 아니다. 노동 규제는 세계 최악 수준이다. 미국 코넬대 등이 작성하는 '세계혁신지수' 순위에서 한국의 노동 규제 효율성은 127국 중 107위였다. 아프리카의 말리·세네갈보다 낮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노동 개혁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전임 정부가 그나마 해놓은 초보적인 노동 시장 유연화 조치마저 백지화시켰다. 대한상의·중소기업중앙회 등이 수많은 '불량 규제'를 발굴해 정부에 리스트를 넘겼지만 실현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래 놓고 '혁신성장'을 하겠다고 한다.

부진한 규제 개혁에 대해 대통령이 "답답하다"고 했지만 정권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크다. 1년 내내 온갖 분야에서 '적폐 청산' 드라이브를 걸며 과거 정책을 부정하고 있다. 나중에 어떤 적폐로 몰릴지 모르는데 관료들이 책임지고 규제를 수술해주길 기대하긴 힘들다. 국정은 친노동·반기업 기조를 치달리고 있다. 규제 개혁은 본질적으로 친시장·친기업 정책인데 국정 기조는 거꾸로 가면서 공무원만 닦달한다고 잘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