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11년 동물뼈를 영국 군인 유해로 속여 송환한 적이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북한의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 유해 송환을 앞두고 미국이 이 과정에 적극적인 관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WSJ에 따르면, 2011년 북한은 영국 정부에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데스먼드 힌턴 공군소위의 유해를 송환했다. 영국 연구소가 유해를 검증한 결과 힌턴 소위의 유해는 동물뼈인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정부는 즉각 북한에 항의했고, 이로 인해 북한 외교단은 유해 복구 과정을 감독한 영국 군 장교와 대치 상황에 빠졌었다.

2018년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만나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발굴 및 송환하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 5월 출간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의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공개된 바 있다. 그는 당시 영국 공군의 유해 소환 문제를 영국 정부와 소통하는 역할을 맡았다.

WSJ는 영국 사례가 미군의 유해 송환을 기다리고 있는 미국에 경계의 메시지를 준다고 해석했다. 최근 미국은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미군 유해 발굴 및 송환의 일정 문제로 혼선을 겪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일 미네소타주 덜루스에서 열린 유세현장에서 “사실 이미 오늘 200구의 유해가 송환됐다”고 밝힌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전날 백악관이 “북한이 며칠 내 유해를 송환할 것”이라고 밝힌 지 하루 만에 유해가 송환됐다고 말한 것이었다. CNN 등 미국 언론들은 유해가 이미 송환됐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또 WSJ는 영국 사례가 미국이 유해 송환 과정에 대한 관리 감독이 얼마나 소홀한지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북한 정부는 유해 송환에 합의한 이후 며칠 내로 유해를 보내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과거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 1구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만 17년이 걸렸다. 또 한국전쟁 전사자들 중에는 미국 뿐만 아니라 다른 국적의 군도 있기 때문에 서로 뒤섞이면 신원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북한 정부가 유해 송환 문제를 대응하는 데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WSJ는 북한이 영국 사건 당시처럼 유해 송환을 흥정카드로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일부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군 유해들을 땅에 묻었을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미국은 1996~2005년 사이 유해 복구 작업을 한 뒤 220구를 미국으로 송환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비핵화 논의가 무산되면서 유해 복구 작업은 중단됐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중 7700명의 미군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이 중 5300구는 북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