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조차 없는 상태에서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주(週) 52시간 근무' 제도에 대해 정부가 6개월간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 기간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고용 현장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반발이 잇따르자 일부 후퇴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온갖 혼선에도 불구하고 '7월 1일 강행' 방침을 고수해 결국 총리가 나서야 했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부작용을 보완할 6개월의 시간을 번 셈이다. 개정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자 300인 이상 작업장에서는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시간을 지키도록 하고 있고 이를 어긴 사업주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를 감옥에 보낼 수 있는 법이지만 법 시행 직전까지 어떤 행위가 법 위반인지를 정부 담당 부처도 잘 모른다고 했다. 법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버스 기사들 이직 움직임으로 '버스 대란' 조짐이 보이고, 산업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법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제품 개발을 위해 며칠, 몇 달을 집중 근무해야 하는 연구직의 경우 형사처벌한다는 소리에 두 손을 놓고 있다.

정부가 6개월 처벌 유예를 결정한 건 다행이나 그런다고 부작용과 문제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독일과 영국은 하루 평균 근로시간이 일정 시간을 넘지 않는 선에서 노사가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프랑스는 특정 계절이나 시기에 일이 몰리면 근로감독관 승인을 받아 근무시간 한도를 아예 없앨 수 있다. 미국과 홍콩은 근로시간 제한을 법에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이 나라들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1년까지 운영하면서 근무시간을 훨씬 유연하게 짜고 있다. 반면 우리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최대 3개월 이내로 규정하고 있고 이마저도 요건이 까다롭다. 이대로 제도를 시행하면 사업주는 범법자가 되기 쉽고 국가 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근로기준법을 만들 때의 산업 상황과 4차 산업혁명을 눈앞에 둔 지금은 근로자의 일하는 행태와 근로의 개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하면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변형노동시간제' '화이트이그젬션' 등 다양한 보완책을 도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보완책도 제대로 없이 덜컥 근로 시간만 줄이겠다고 하다가 이런 상황까지 왔다. '주 52시간'이란 침대에 억지로 맞추려면 사람의 사지를 자르는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회는 유예된 6개월 동안 법을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