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일본 도쿄 구청들이 주선하는 시민 운동 프로그램에 인지 기능이 떨어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있다. 치매로 진단될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들어 건망증이 심해지고 기억력이 감소한 60~70대 대상이다. 의학적으로 경도 인지 장애로 분류된다. 이들이 하는 운동이 특이하다.

다섯 명씩 한 그룹이 원을 지어 선다. 앞에는 발을 딛고 올라설 수 있는 사각 베개 모양의 스텝퍼가 놓여 있다. "시작!" 소리에 맞춰 왼발·오른발 한 발씩 스텝퍼에 올라섰다가 내려오는 동작을 반복한다. 계단 오르는 효과로 하체 근육이 단련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끝말잇기를 한다. 가방-방어-어미-미술…. 틀리면 틀리는 대로 웃음을 터뜨리며 계단 오르기와 낱말 잇기를 계속 한다. 이는 일본 국립장수의료센터가 치매 예방 목적으로 개발한 '코그니사이즈'다. 영어로 인지 기능을 말하는 코그니션(cognition)과 운동을 뜻하는 엑서사이즈(exercise)를 합친 용어다. 간단하게 말해서 운동하면서 머리 쓰자는 거다.

일찌감치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 일본은 2011년 이미 치매 환자가 460만명 나왔다. 경도 인지 장애는 약 4000만명이나 됐다. 이에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치매를 줄일 수 있을까 장기간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나온 '작품'이 코그니사이즈다. 치매 줄이는 3대 요소가 운동, 머리 쓰기, 어울림인데, 이 셋을 한꺼번에 하는 종합 세트다. 코그니사이즈는 일본 전역 노인센터, 구청 강좌, YMCA, 보건소 등에 보급되어 있다. 방송 프로그램에도, 어르신 대상 홈쇼핑에서도 약방의 감초 격으로 나온다.

일러스트=이철원

몸과 머리를 같이 쓴 효과는 대단했다. 국립장수센터가 나고야 지역 65세 이상 노인 4600명을 대상으로 경도 인지 장애를 찾아내고 코그니사이즈를 시키며 4년을 관찰한 결과 인지 장애 절반(46%)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운동만 한 그룹보다, 인지 학습만 한 그룹보다 개선율이 좋았다. 기억력 점수가 노인 평균 6.1점에서 시작해 1년 만에 7.3으로 오른 연구도 있다. MRI로 촬영한 결과 코그니사이즈 뇌는 치매로 진행될 때 보이는 뇌 위축이 매우 적게 나타났다. 뇌는 신경망이 얽히고설킨 전자회로 구조다. 운동으로 뇌 혈류가 늘어나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海馬)가 달아오른 상태에서 집중적으로 머리를 쓰니 인지 기능 개선이 상승효과를 얻은 것으로 본다. 그 결과로 두터운 신경망이 구축됐다. 코그니사이즈 기본은 하루에 30분씩(10분씩 세 번 분할도 가능), 일주일에 3일 이상 하는 것이다.

코그니사이즈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바닥에 사다리 모양으로 줄을 그려 놓고 칸 따라 한 발씩 잰걸음으로 걷는다. 그 과정에서 특정 차례의 스텝에서는 발을 사다리 칸 밖으로 빼야 한다. 운동 지도자가 3배수라고 외치면 3·6·9…걸음에서 발을 밖으로 내디뎌야 한다. 숫자 룰은 도중에 바뀌기 때문에 운동 내내 몸도 머리도 쉴 틈이 없다. 제자리걸음 하다가 5배수에 손을 드는 흰띠 수준부터 앞쪽과 옆쪽으로 스쿼트를 번갈아 하면서 일어날 때마다 100에서 7을 뺀 숫자를 외치는 검은 띠 수준도 있다. 몸과 머리 난이도별로 여러 조합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책들이 나와 있다. 스탠딩 자전거를 타면서 앞에 달린 모니터로 퀴즈를 풀거나 산수를 하는 '코그니자전거'도 등장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혼자서 할 수 있다. 길을 걷거나 산보를 하면서 걸음마다 숫자와 한글 자모음을 교대로 되뇐다. 1, 2, 가, 3, 4, 나, 5, 6, 다…. 좀전에 되뇐 숫자와 자모음을 기억하고 다음의 것을 말하며 걷는 방식이다. 틀려도 다시 맞춰가며 계속 하면 된다. 거실서 TV를 보다가, 버스를 기다리거나, 지하철 안에서도 종아리 근육 단련용 까치발과 오늘의 요일부터 뒤로 빼는 조합을 할 수 있다. 발뒤꿈치를 천천히 올릴 때 화요일, 내릴 때 월요일, 다시 올릴 때 일요일 ….

치매는 70대부터 급속히 늘어난다. 뇌 활성 세포 감소와 뇌 조직 위축은 치매 발생 20년 전부터 일어난다. 치매 예방 활동은 최소 40대 후반과 50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냥 편하게 지내지, 왜 이리 피곤하게 사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게다. 하지만 세상사, 양적으로 충분해야 질적으로 우수하다. 몸과 머리를 부단히 움직이고 써야 정신이 맑아지고 인생 후반이 풍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