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6일~9월16일 대구시립미술관에서 '간송 조선 회화 명품전'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대표적 작품 100여점 전시
-신윤복의 '미인도', 김홍도의 '마상청앵' 등 보물 9점, 보물지정예고작 4점 등

지난 16일 대구시립미술관을 찾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우리 전통 회화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고 했다. 이날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은 2100여명. 다음날인 일요일 17일에는 관람객이 그보다 많은 2800여명을 기록했다.

대구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 조선회화 명품전'을 보러온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


민족문화의 성지로 불리우는 간송미술관 소장품들이 대거 대구에서 선보인다. 간송미술관이 개관 80주년을 맞아 여는 뜻깊은 자리다.
간송미술관과 대구시는 16일부터 9월16일까지 석달여에 걸쳐 대구시립미술관에서 '간송 조선회화 명품전'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간송미술관이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5월22일부터 8월19일까지 대구시립미술관에서는 ‘김환기전’이 열리고 있어 미술관은 한동안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환기는 최근 우리 미술작품의 경매 최고가액을 잇따라 새로 깨뜨린 인물이지만 이를 떠나 우리 회화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회는 간송미술관 개관 80주년을 기념하는 것. 또한 대구에서 간송미술관 분관(대구간송미술관)이 본격 추진되고 있는 시점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미리 간송미술관을 엿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대구시는 간송미술관 분관을 대구로 유치하는데 성공했으며, 현 대구시립미술관 바로 옆에 건립될 예정이다. 2020년 공사에 들어가 2022년 완공예정이다.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 시절 간송 전형필(1906년~1962년) 선생이 건립한 보화각이 시작이다. 간송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문화가 왜곡되고 단절될 위기에 놓이자 민족 문화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중요한 미술품들을 거액을 주고 사들였다. 이를 보존할 곳이 필요해서 1938년 건립한 건물이 바로 보화각이다.

보화각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이라는 역사적 사실 뿐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을 지키고 보존하는 지킴이 역할을 담당해 왔다. 1962년 간송 선생이 타계한뒤에는 간송미술관으로 명칭이 바뀌어 지킴이 역할을 계속해 왔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일 작품들은 조선시대 최고 거장들의 진품회화, 명품 중의 명품들이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값진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조선회화 100여점, 간송유품 30여점, 미디어 아트 등이다.

조선회화 작품들은 각 시대별로 최고의 성가를 이룩했던 대가들의 걸작이 망라돼 있다. 간송미술관의 수집품만으로도 조선시대 회화사의 대강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회화작품들의 수와 질적인 면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전시작품 중 보물로 지정된 것이 9점, 보물 지정이 예고된 것이 4점에 달한다.

간송미술관측은 “간송 선생이 조선시대 그림을 중점적으로 수집했던 것은 일제의 의해 가장 많은 왜곡과 폄하가 가해졌던 부분이 조선의 역사와 문화였기 때문에 조선시대 문화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그림들을 집중적으로 수집해 조선의 문화 역량을 우리 후손들에게 알려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작품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조선회화의 진수들이다. 시대별로 초중기, 후기, 말기로 편의상 구분했다. 주요 출품작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정의 '풍죽'


◇이정(李霆, 1554~1626)의 '풍죽'(風竹·바람에 맞선 대)
비단에 수묵으로 펼친 작품이다. 이정은 한국회화 사상 최고의 묵죽화가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그의 묵죽화 중에서도 백미라 부를만한 최상의 걸작이라고 한다. 바람에 맞선 대나무 네 그루를 화폭에 옮겼다. 휘몰아치는 강풍에 대나무들이 이내 찢겨나갈 듯 요동치지만 전면의 중앙에 자리한 대나무는 댓잎만 나부낄 뿐 튼실한 줄기는 탄력 있게 휘어지며 당당히 바람에 맞서고 있다. 현재 오만원권 뒷면을 자세히 보면 조선시대 화가 어몽룡의 매화와 함께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선의 '풍악내산총람'


◇정선(鄭敾, 1676~1759)의 '풍악내산총람'(楓嶽內山總覽·풍악내산을 총괄해 살펴보다)
풍악은 금강산의 가을 이름. 수천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금강산 내금강의 전모를 세세히 파악해 한 화폭 안에 담은 작품이다. 여러 암봉들을 서릿발 같은 필선으로만 처리해 금강산의 기이하고 높으며 깎아 지른 듯한 암봉의 참맛을 살려내면서도 이를 둘러싼 토산은 먹점만으로 부드럽게 처리해 음양의 조화를 이루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내금강의 빼어난 경관을 가보지 않고도 와유(臥遊·누워서 여행함)하게 해준다. 난숙기에 접어든 64세쯤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심사정의 '촉잔도권'(부분)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촉잔도권'(蜀棧圖卷)
조선남종화의 대가인 선비화가 심사정이 62세때 조카인 심유진의 부탁을 받고 그린 작품. 중국 사천성 가릉강 촉도산천을 그린 두루마리 그림이다. 길이가 무려 8m 18㎝에 이른다.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험준한 지형을 수많은 바위산들과 이어졌다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길로 표현했다. 특히 이 작품에는 산수화에서 쓰이는 12준법이 갖춰져 있기도 하다. 심사정이 생애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기도 해서 더욱 애잔하다.

김홍도의 '마상청앵'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마상청앵'(馬上聽鶯·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 듣다, 보물 1970호)
우리에게는 풍속화로 잘 알려졌지만 인물, 화조, 산수 등 어느것 하나 모자람이 없었던 김홍도의 걸작. 녹음이 무성하고 여러 꽃이 만발하는 늦봄 어느 화창한 날에 젊은 선비가 춘정(春情)을 이기지 못해 문득 말에 올라 봄을 찾아 나선 광경이다. 길가 버드나무 위에서 꾀꼬리 한 쌍이 화답하는 장면을 넋 나간 선비는 바라보고 있다. 인물 묘사에 사용된 섬세한 필선, 말과 마구에 사용된 부드러운 필법, 손비의 시선과 표정, 대담한 공간감 등이 알 어우려져 있는 뛰어난 풍속화라 할 수 있다.

김득신의 '야묘도추'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야묘도추'(野猫盜雛·들고양이 병아리를 훔치다, 보물 지정 예고)
김득신의 풍속화를 모은 화첩 '긍재풍속도첩'에 수록된 작품. 화창한 봄날, 도둑고양이가 병아리를 채어 달아나자 놀란 어미 닭이 새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뒤를 쫓는다. 주인부부는 하던 일을 팽개치고 병아리를 구하려 한다. 마루 위에서 동동걸음 치는 아내의 동작과 마루 아래로 뛰어내리면서 장죽으로 고양이를 후려치는 남편의 동작이 코믹하면서도 생생하다. 일순간에 벌어지는 소동을 포착한 수작으로 꼽힌다.

신윤복의 '미인도'


◇신윤복(申潤福, 1758~?)의 '미인도'(美人圖, 보물 1973호)
조선 회화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 한양의 풍류생활을 주도하던 아리따운 여인의 초상화다. 당시 일반살림집 규수는 외간 남자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제도로 미뤄 초상화의 주인공은 기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고리깃과 겨드랑이, 옷고름이 진자주 빛으로 회장(回裝)을 대고 멋을 부렸으니 한양의 세련된 기생으로 봄직하다. 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여린 듯 둥근 얼굴에 열망을 가득 담은채 부푼 입술, 그윽한 눈빛은 그림 그리는 이의 열망까지 담았다. 19세기 미인도 제작의 원형을 제시했다.

김정희의 '적설만산'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적설만산'(積雪滿山·쌓인 눈 산 덮다, 보물 지정 예고)
추사 김정희의 요체를 잘 보여주는 작품. 짧고 촘촘한 잎들이 보통의 길고 유연한 잎들과는 사뭇 다르다. 붓을 급히 눌러 나가다 짧게 뽑는 필치로 일관해 억센 잔디 같은 느낌을 준다. 사계적의 차이가 분명하고 바위산이 많은 우리의 기후풍토에서 비롯한 고유의 미감이라 할 수 있다. 담묵으로 그린 꽃은 꽃대가 짧고 꽃잎은 매우 단조로와 눈보라에 시달리며 한 겨울을 지내고 나서 봄바람을 만나 꽃대를 내밀었던 모양을 담고 있다.
/대구=박원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