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14일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핵화'"라며 "절대 인권 문제를 (대북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걸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이날 이화여대에서 열린 시사토론회에서 '북한과의 대화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우선순위(priority)를 두고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 비핵화가 먼저고 그다음이 인권"이라며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고 경제가 나아져 그 결과로 인권 문제가 개선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인권 문제를 제기하기는 했지만 이를 우선순위로 놓지는 않았다"며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인권 문제보다) 먼저"라고 했다.그동안 문 특보는 사드 배치, 주한미군, 한·미 군사훈련 등 민감한 안보 현안에 대해 '급진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때마다 청와대는 "사견(私見)"이라며 '보호막'을 쳐줬지만 문 특보 주장은 대북 협상 과정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문 특보 발언은 통일부가 북한인권재단 사무실의 임대차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날 나왔다. 북한인권재단은 11년간 여야 줄다리기 끝에 2016년 처리된 '북한인권법'의 핵심인데 이사진 구성의 책임을 진 국회의 비협조와 갈등으로 출범이 미뤄져 왔다. 정부는 빈 사무실 임대 비용 절약을 이유로 들었으나 "북한이 민감해하는 인권 문제는 뒷전으로 두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는 북한인권법에 따라 2016년 설치된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인권대사)도 8개월째 공석으로 두고 있다. 전임 이정훈 대사의 경우 "북 인권 문제는 북한의 탄도 미사일, 핵위협과 같은 견지에서 다뤄야 한다"고 했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일부러 그 자리만 공석으로 두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문 특보 발언은 결국 청와대, 정부와의 교감하에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며 "북한 인권 문제도 결국 그의 말처럼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 또한 미·북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북한 인권에 대해 태도가 소극적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14일(현지 시각) 정례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왜 북한의 잔혹한 행위들을 지나치려 하느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에서) 여러 차례 북한의 인권 기록과 인권 유린 문제를 제기했다"면서도 "다만 정상회담의 초점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였고, 이것이 대화 목적이었다"고 했다. 그에 대한 반발로 미 하원에서는 '북한 정권의 잔혹한 인권유린 행위 개선 없이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대북(對北) 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는 내용의 '제재 완화 제한' 법안이 상정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평화 협정 이후엔 주한미군 주둔의 정당화는 어려울 것"이라는 문 특보의 지난 5월 '예언'도 들어맞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5일 브리핑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논의된 바 없다"고 했지만, 트럼프 정부 내에 기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권의 한 인사는 "문 특보가 2017년 6월 한·미 군사훈련 축소를 얘기했을 때만 해도 비현실적으로 들렸는데 1년 만에 현실화됐다"며 "주한미군 문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