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00억달러(약 54조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 부과를 승인함에 따라 미·중 간 무역전쟁이 다시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미 백악관, 상무부, 재무부, 미 무역대표부(USTR) 고위 관료와 회의를 열고, 25%의 관세를 부과할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 목록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정확한 관세 발효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다

WSJ은 오는 15일 USTR이 발표할 관세 적용 중국산 제품 최종 목록이 올해 초 공개한 예비 목록과 유사할 것으로 예상했다. USTR은 지난 4월 정보기술, 로봇, 항공우주, 제약 등 1300개에 달하는 관세 적용 중국산 품목 후보군을 발표하고, 60일간 공청회 등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최종안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중국은 미국의 조치에 강력 반발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관세를 부과한다면 중국은 무역전쟁에서 승리할 준비가 됐나’라는 질문에 “이달 초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이끈 미 대표단이 중국과 협의해 긍정적이고 구체적인 진전을 이뤘다”며 “협상 후 중국은 성명을 통해 미국이 관세 부과 포함한 무역 제재를 하면 양국이 협의한 모든 무역 성과가 무효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점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과 중국은 맞보복 관세를 물리며 무역전쟁을 벌여오다 지난달 2차 미·중 무역협상에서 무역전쟁과 상호 관세부과를 중지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번복하고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 부과를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미국과 중국은 이달 초 3차 무역협상을 진행했고, 중국은 협상 후 미국이 추가 관세 부과 등 제재를 취하면 양국이 합의한 경제 무역 성과의 효력이 무효화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워 글로벌 무역전쟁을 촉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등 서방 동맹국에도 관세 폭탄을 발표해 반발을 샀다.

2018년 6월 9일 캐나다 퀘벡주에서 열린 서방 선진 7개국(G7) 정상회의 중 한 장면. 좁은 탁자를 짚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응시하고 있다. 메르켈 옆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테리사 메이(맨 왼쪽 안경 쓴 이 뒤쪽) 영국 총리가 서 있다. 이들 반대편엔 팔짱을 낀 트럼프 대통령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맞서 있다. 유럽 정상들과 미국 정상 사이에 서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표정은 복잡하다. 미국과 나머지 국가들(G6)로 쪼개진 이번 회담의 혼란상을 가장 압축해 보여주는 사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양 진영 간 갈등의 골은 깊어가고 있다. EU와 캐나다는 지난 9일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보호무역과 관세 장벽을 배제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를 겨냥한 것이다. 이에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싱가포르로 향하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 대표단에 공동성명 내용을 승인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대응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발 무역전쟁이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이날 “거시경제의 영향을 과소평가하지 말자”며 “캐나다와 유럽 국가 등 미국이 관세를 부과한 무역 상대국들이 보복을 단행하면 더 큰 경제적 피해를 입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무역 보복 조치들은 개방적이고 공정하며 규칙적인 무역 시스템을 파괴하고, 미국과 세계 각국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무역 보복은 국내외 투자를 저해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방해하며, 미국의 성장과 일자리 창줄 시스템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내에서도 무역전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통상 온건파의 핵심 인물이었던 개리 콘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날 워싱턴포스트가 주최한 행사에서 “무역 분쟁은 세금 감면 정책의 효과를 저해하고, 미국 경제를 침체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콘 전 위원장은 사임 전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관세 부과를 반대했다.

그는 “관세 전쟁은 가격 인상을 초래하고, 이는 소비자의 부채로 끝날 것”이라며 “이것은 역사적으로 경제를 침체시킨 요인들”이라며 “했다. 그러면서 ‘무역전쟁이 지난해 단행한 세제 개혁의 효과를 없앨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