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북 실무그룹이 현지에서 막바지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9일 "비핵화의 구체적인 방식과 단계와 관련, 어느 정도의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미국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북한이 비핵화의 상세 내용을 일부 받아들이고 미국이 종전선언 등 체제보장안을 내놓는 식의 합의가 이뤄지면 공동선언이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10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 미·북은 회담을 12일 당일로 마무리할 계획이며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공동 성명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한 판문점 협상의 미국 측 대표였던 성 김 주필리핀 대사는 이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이 묵는 샹그릴라 호텔 로비에서 목격됐다. 김 대사가 싱가포르에 온 것은 의제 협상의 북한 측 대표였던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을 만나 막바지 조율 작업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궁극적으로 평양에 대사관을 개설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 대가로 무엇을 얻는가에 달려 있으며, 비핵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F-1 경기장에 들어선 미디어센터… 2000여명 '취재 레이스' - 미·북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현지 시각) 싱가포르의 자동차 경주대회 F-1 경기장에 차려진 미디어센터에서 각국 취재진 2000여명이 회담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세기적인 담판이 될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싱가포르의 회담 관련 시설 근처엔 10일 오전부터 긴장감이 한층 높아졌다. 싱가포르와 미국 정부 등에서 운영하는 미디어센터엔 전 세계 기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기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도대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고들 했다. '예측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 기질'이란 변수가 있는 한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북 정상회담이 전 세계인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초특급 외교행사가 된 것만으로도 이미 '세기적인 성공'을 거뒀다는 평이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정은이 도중에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지만 않으면 성공이란 것이다.

미국의 고민은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이 공동선언에 담기지 못할 경우 미국이 '얻은 게 없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이 비핵화의 큰 원칙만 합의하고 구체적인 방안은 미국으로 넘겼기 때문에 미국은 훨씬 더 높아진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여기엔 미국의 자존심도 걸려 있다. 역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인 만큼 판문점 선언 이상의 결과를 끌어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측이 포괄적인 비핵화 원칙 이상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 의제 실무회담이 막바지에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김정은은 정상회담에서 '깜짝 선물'로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에서 속 시원한 진전이 없는 미·북 정상회담 결과를 보완하려 할 수도 있다. 풍계리 핵시설 폭파처럼 또 다른 핵시설 파괴를 제안할 수도 있고, 50년 전 나포된 푸에블로호 반환 등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정상회담을 기약하는 것만으로도 또 하나의 성과로 포장될 수 있다. 정상회담을 계속해 나가는 동안에는 북한의 추가 핵·미사일 시험도 없고 미국의 추가 제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그 자체가 긴장 고조를 억지하는 평화 노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