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2일 벚꽃처럼 화사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서울의 한 건물 로비에 엄마 수십 명이 모였다. 장하나 전 국회의원이 한 언론사에 기고한 '정치에 여성들이 나서야만 독박육아가 끝나고, 평등하고 행복한 가족 공동체를 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는 칼럼에 마음이 동한 엄마들이었다. 이들은 이날 우리나라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토론과 비판, 고발을 몇 시간에 걸쳐 이어갔다. 그리고 다음 세대만큼은 이런 일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루고, 자신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최근 단체의 탄생 과정과 여러 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 등을 모아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는 신간을 펴냈다. (왼쪽부터)이고은·조성실·장하나 공동대표.

◇엄마가 나서야 세상 바꿀 수 있다

'정치'와 '엄마'의 조합. 아직 우리에게는 낯설다. 하지만 정치하는엄마들의 장하나(41)·이고은(37)·조성실(32) 공동대표는 엄마야말로 정치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조 대표는 "정치는 일상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오롯이 체감하는 엄마들이야말로 정치의 필요성과 개선 방법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다"며 "기득권 세력의 '엘리트 정치'가 아니라 생활인이자 돌봄의 주체로서의 당사자 정치가 희소성이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지금은 마을은커녕 각자 제 살길만 찾느라 바쁜 시대가 아니냐"고 지적하며 "정부와 국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헛헛한 공약만 난무했을 뿐, 부모들은 정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그들은 엄마가 되니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를 키워보면 육아에는 모든 이슈가 겹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노동, 보육, 교육, 주거 등 어느 것 하나 관련되지 않은 게 없어요. 부모가 제때 퇴근하지 못하는 까닭에 아이들은 유아기 때부터 학원을 전전합니다. 학원은 교육을 위한 게 아니라, 노동시간이 긴 우리나라 부모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보육 대안인 거죠. 그리고 여기에서 출발한 사교육은 학령기가 끝날 때까지 이어집니다. 저녁 없는 삶을 사는 부모들은 자식들이 헬조선의 울타리를 조금이라도 뛰어넘길 바라며 교육에 헌신하는 거예요. 그 때문에 사교육에 몰입하는 가정을 그들만의 문제, 엄마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정치하는엄마들의 정회원은 약 200명, 온라인 커뮤니티 가입자는 2000여 명에 달한 만큼 엄마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그들은 정치를 통해 ▲모든 엄마가 차별받지 않는 성평등 ▲모든 아이가 사람답게 사는 복지사회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비폭력 사회 ▲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옹호하는 생태사회를 일구고자 한다.

◇"모두가 엄마다"… 아이 함께 돌보는 사회 돼야

단체 내 토론을 펼치던 중 한 회원이 '모두가 엄마다'라는 단체 슬로건을 제시했다. 아이를 돌보고 보살피고 기르는 행위를 엄마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되며, 그런 식의 모성신화가 오늘날 엄마들을 옭아매는 굴레가 된다는 의미에서다. 이 의견은 회원들 사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집단모성'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졌다. 장 대표의 얘기다. "아이들을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함께 돌보는 순간,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로 변할 겁니다. 내 아이를 잘 돌보고 내 가정만 잘사는 것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키운다는 개념으로 관점을 이동할 때 현안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치하는엄마들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창립 몇 달 만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보건복지부, 서울시 등 각종 정부 부처와 지자체로부터 부모 당사자로서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요청을 받았다. 이외에도 각종 안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대표는 "정치하는 엄마들이 점점 더 늘어나 마을 곳곳에서 엄마들의 자치 모임이 생겨나고, 엄마들이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지방자치 의회와 국회에도 진입한다면 어떨까"라며 "정치하는엄마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연대할 수 있는 시민조직과 정치인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