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수 천문학자·서울대 명예교수

국문학자는 책 속의 글자를 파고, 지질학자는 땅속의 암석을 파지만, 불행하게도 천문학자는 눈앞에 팔 수 있는 연구 대상이 거의 없다. 나는 평생 별들 사이의 티끌을 연구했는데, 한 번도 우주로 나가 그 티끌을 만져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티끌의 비밀을 별들에게 물어봐야 할까? 이쯤 되면 천문학자는 형이상학을 연구하는 고상한 철학자와 동급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어깨를 으쓱할 법한데, 나 역시 그 철학자와 똑같이 현실에서 그리 융숭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이의 삶에는 존재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언제 어떻게 깨닫느냐에 따라 존재 가치가 달라질 수도 있다. 대부분 사람들처럼 나는 지구의 얇은 껍데기인 땅을 디디고 끝없는 하늘을 우러르며 성간(星間) 티끌을 연구해 왔는데, 뒤늦게 깨달은 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그 티끌이라는 사실이다. 천문학 차원에서 볼 때 우리 몸을 이루는 성분은 바로 그 티끌에서 왔고, 나중에 결국 그 티끌로 돌아간다.

알고 보니 나의 연구 대상은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인간을 파야 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의 삶과 주변부터 깊이 파고들어야 했고, 관점도 바꿔서 하늘에서 땅 위를 관측하듯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지난 수십 년간 나도 모르게 틈틈이 남들 눈에 자못 엉뚱해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수없이 쓰고 가까운 이들에게 읽혔던 것 같다.

몇 년 전 절망적인 의학적 진단을 받고 나서 대책 부재의 절벽 앞에 선 마음에 잊고 있었던 그 이야기의 실타래를, 부끄럽지만 이 책 '하늘을 디디고 땅을 우러르며'(공존)를 통해 풀어놓았다. 더 많은 분과 함께 하늘을 디디고 땅을 우러르고자 한다. 티끌로 돌아갈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