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련형 흡연자들 "식약처 발표 못 믿겠다"
"유해한 것 새삼스럽지 않아" 반응도
판매점들은 "큰 타격 없다"
전문가 "위해성 확인한 것이 중요"

식약처가 7일 '덜 해로운 담배'로 홍보됐던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더 많은 타르(tar)성분이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유해성이 낮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한국 시장에 궐련형 전자담배 기기가 첫 상륙한 후 이용자는 급속히 늘었다.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는 190만대, KT&G의 릴은 25만대가 팔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발표가 나오자 기기 사용자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래도 피우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당국의 유해성 발표를 여러 논리로 반박하는 '회피 심리'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7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기동팀이 서울 중구, 강남구 일대에서 흡연자들의 반응과 전문가들 분석을 함께 들어봤다.

보건당국이 궐련형 전자담배 역시 유해물질을 대거 함유하고 있다고 발표한 7일,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는 흡연인들은 “연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신승리형 흡연자 "식약처 발표 안믿는다"
이날 오후 4시쯤,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커피전문점 앞. 직장인 3명이 궐련형 전자담배를 손에 들고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식약처 발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셋 중 가장 연장자인 홍모(42)씨는 "발표를 선뜻 믿기 어려웠다"며 "해당 업체 기기로 측정을 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며 "타르 함유량으로 더 유해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주요 유해 성분은 일반담배보다 더 적게 검출됐지만, 타르는 궐련형 전자담배가 더 많았다"며 "타르가 더 많으니 위해성분이 더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견해를 이런 식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국산불신형 흡연자 "독일 연구를 봐라"
직장인 윤모(33)씨는 독일 연방기관의 연구결과를 더 신뢰한다고 했다. 독일 연방 농림식품부 소속 '독일연방위해평가원'은 궐련형 전자담배의 배출 물질을 연구한 결과 일반 담배보다 주요 발암물질인 알데히드는 80~95%, 휘발성 유기 화합물은 97~99% 적게 배출한다고 지난달 9일 발표했다. 윤씨는 "독일 기관의 연구에서는 타르가 일반 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를 비교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봤다"며 "불로 태워 연기를 내는 일반담배와 쪄서 수증기를 내는 궐련형 담배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본다"고 했다.

◇음모론집착형 흡연자 "세금 낮다고 그러는 것"
직장인 황모(33)씨는 "식약처가 발표한 내용을 자세히 보면, 실상은 전자담배에 발암물질이 더 적다는 내용"이라며 "정부가 흡연을 죄악시하면서도 세금 뜯는데 맛들려 이런 결과를 발표한 것 같다"고 했다. 즉, 세금이 더 많이 걷히는 일반 담배의 유해성 대신 전자담배 유해성을 더 강조한다는 주장이다. 일반담배에는 1갑당 지방세 1007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841원, 개별소비세(개소세) 594원 등 3323원의 세금이 붙는다. 궐련형 전자담배에는 1갑당 일반담배의 90% 수준인 3004원의 세금이 붙는다.

◇건강제일주의 흡연자 "액상으로 갈아탄다"
직장인 최모(43)씨는 식약처 발표를 접하고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로 바로 바꿨다고 했다. 최씨는 "흡연감이 일반 담배와 비슷하고, 타르가 덜 나온다고 해서 궐련형을 펴왔다"면서 "타르가 더 나온다는 마당에 굳이 궐련형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전부터 눈여겨보던 액상형 제품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유해성 상관없이 계속 필 것"…판매점 "매출 이상無"
정부의 발표와 상관없이 궐련형 담배를 계속 이용하겠다는 의견이 전반적으로 많았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권태완(43)씨는 "유해하다는 걸 몰라서 담배를 안 끊은 게 아니다"라며 "냄새도 덜 나고 재가 날리지 않기 때문에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운다"며 "정부 발표 때문에 끊거나 일반담배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대학생 김용성(27)씨도 "일반 담배에서 전자담배로 바꾼 이후 냄새도 안 나고 아침에 몸이 가볍다"며 "식약처 발표와 관계없이 계속 전자담배를 택하겠다"고 했다.

판매점들도 일단 이번 발표에 따른 매출 타격은 크지 않다는 반응이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편의점주는 “궐련형 담배 매출에 변화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며 “하루 평균 240여 개씩 판매되는데, 이날도 비슷했다”고 말했다. 광화문역 인근 편의점 관리자는 “궐련형 담배 판매 실적이 어느때보다 좋다”면서 “이번 발표로 전체 판매량이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니코틴 함유량이 덜한 제품이 4개 가량 더 팔리고 함유량이 많은 제품들이 2~3개 정도 줄었다”고 했다.

일반 담배를 피는 김성민(29)씨는 “쪄서 피든 태워 피든 똑같이 몸에 나쁠거라고 봤다”면서 “안 바꾸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성 모(34)씨는 “아내가 궐련형 전자담배도 나쁘다고 잔소리를 많이 해서 올해 초 액상형 전자담배로 바꿨다”면서 “흡연감은 좀 떨어지지만, 건강에 덜 해롭다는 측면에서 잘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 전문가들 "금연 의도로 궐련형 전자담배 이용했던 사람들에겐 충격"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이코스 등 가열식 담배 속 유해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장기간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연소방식이 아니라서 덜 해롭다고 주장하는 건 그냥 담배 회사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전자담배 피우고 난 후 일반 담배 피울 때보다 몸이 가볍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용자가 그런 느낌을 가질 수는 있지만 결국 니코틴 함량은 똑같다"고 지적했다.

이성규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덜 유해하다는 주장에 대해 “담배에 7000가지 화학물질과 70가지 발암물질이 들어있는데 이중 몇가지 수치가 적게 나왔다고 ‘덜 해롭다’고 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며 “독성은 적은 양으로도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 궐련형 담배에 독성이 있다는 점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식약처 결과와 상관없이 궐련형 전자담배 흡연을 고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금연 의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며 “단순히 냄새가 덜 나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운 사람은 이번 연구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지만 금연 과정으로 전자담배를 피운 사람은 결과에 적잖이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김대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냄새가 적고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운다는 사람이 많다”며 “당국이나 전문가는 흡연자 관점에서 궐련형 전자담배를 이용하는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