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먹어본 북한의 ‘인조콩고기밥’은 고기 맛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고소함이 살아 있었다.

"북한에도 라면이 있느냐고요?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네요."

지난 5일 서울 구로구의 한 사무실. 탈북자 김남구(가명)씨는 테이블에 펼쳐진 북한 라면을 보며 "북에서도 못 본 걸 남한에서 보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옆에 서 있던 탈북자 최현준 통일미래연대 대표는 "북에서 라면 한 봉지는 쌀 1kg에 맞먹는 사치품"이라며 "평양에 사는 사람이나 맛볼 수 있는 물건"이라고 거들었다.

북한 사람들조차 생소한 이 물건을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오는 10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라면박람회'의 북한음식관에서 북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북한 라면이 일반에 공개되는 건 처음이다.

남북관계엔 역설이 있다. 폐쇄사회인 북한은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개방사회인 한국엔 북한에 관한 정보가 너무 모자란다는 것. 음식이 대표적 예다. 냉면이나 아바이 순대를 제외하면, 한국 사람 대부분은 북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뭘 먹는지 모른다. 이번 박람회에서 북한음식관을 운영할 최 대표는 "음식이 곧 문화인데, 남북이 서로 잘 이해하려면 음식도 많이 맛봐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씀. 남북관계 개선을 바란다는 명분으로 Why?가 박람회에 앞서 출품될 북한 음식을 미리 맛봤다.

사치품 북한 라면, 맛은 중국 라면과 비슷

이번 박람회를 위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회의(민화협)가 중국을 통해 공수해온 북한 라면의 포장지엔 굵고 진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즉석국수.' 또 다른 라면 봉지엔 '속성국수'라고 적혀 있었다. 민화협에 따르면 북한에서 기름에 튀긴 면을 가공해 먹는 형태의 라면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 말. 일본 조총련계 사업가가 평양에 밀가루 공장을 세운 뒤 라면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북한에서 라면은 처음엔 '꼬부랑 국수'라고 불렸다. 건더기나 수프 없이 면만 포장해 팔았다. 한국처럼 봉지라면이나 컵라면 안에 건더기와 수프까지 들어간 일체형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이후라고 한다.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다는 '소고기맛 즉석국수'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용기 옆면엔 생산지가 '평양 만경대구역 칠골 2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만경대구역은 도심에선 떨어진 외곽의 공장지대라고 한다. 공장 전화번호도 적혀 있는데, 지역 번호가 '02'로 시작한다. 평양 지역번호가 서울과 똑같기 때문이다. 원료로는 밀가루, 농마(녹말)가루, 정제소금, 식용기름, 소고기 복합양념을 썼다고 적혀 있다. 한국 신라면의 경우 원재료에 칠리맛풍미분, 야채조미추출분 등 약 50가지 성분을 밝힌 것에 비하면 단출했다.

가장 중요한 맛. 조리 방법은 한국 라면과 다를 것 없었다. 수프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5분쯤 기다리면 완성이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에서 고수 비슷한 향신료 냄새가 났다. 국물 한 모금 들이켜고, 면을 한입 후루룩 먹었다. 제법 그럴듯한 소고기맛이 느껴졌다. 한국 라면과 달리 느끼한 맛 중심이었다. 북한 라면을 처음 먹는 기자와 탈북자들 모두 "중국 라면 같다"는 평을 내놓았다. 소고기맛 라면 외에 김치맛 라면이나 토장(된장)맛 라면도 모두 국물은 소고기 양념수프가 기본이었다. 2000년대 전후로 북한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강해진 것이 라면 맛에도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고난의 행군' 후 달라진 북한 음식

냉면이나 순대가 북한 음식 문화의 전부가 아니다. 이런 음식은 라면처럼 사치품에 더 가깝다. 최 대표는 "북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은 전혀 다르다"고 했다. 그가 내놓은 북한 음식 '대표선수'는 두부밥과 인조콩고기밥, 그리고 속도전떡(옥수수떡)이다. 두부밥은 얇게 썬 두부를 기름에 튀긴 뒤 그사이에 양념한 밥을 넣어 먹는 것이다. 인조콩고기밥은 콩기름을 만들고 남은 대두박(大豆粕·콩비지)을 열로 압착해 만든 이른바 '콩고기'에 밥을 싸먹는 음식이다. 대두박은 한국에선 식물성 사료로 주로 쓰지만, 고기를 구경하기 힘든 북한에선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콩은 재배 기간이 짧고 지력(地力) 회복에도 좋아서 고난의 행군 이후 대표적 구황작물로 자리 잡았다. 두부밥과 인조콩고기밥은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음식이다. 2000년대 이후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시장인 '장마당'에 사람들이 이 음식들을 내다팔면서 북한 전역에 급격하게 퍼졌다. 둘 다 콩 특유의 고소한 맛이 잘 살아 있는 별미였다. 그냥 먹으면 담백했고, 고춧가루 양념에 찍어 먹어도 잘 어울렸다. 두부밥은 일본의 유부초밥과 비슷한 맛이 났는데, 그보다 두부의 풍미가 더 살아 있었다. 인조콩고기도 고기 맛은 거의 안 났지만 쫄깃하고 씹는 맛이 있었다.

속도전떡은 북한의 전투식량이다. 열을 가한 옥수수 가루를 물에 개어 즉석에서 만든 반죽을 한입 크기로 떼어내서 먹는다. 말 그대로 재료만 있으면 금방 만들어 먹을 수 있어 속도전떡이다. 이 역시 고난의 행군 시대에 군대 보급식량으로 퍼진 게 주민들에게도 전파된 경우다. 한입 베어 무니 쫄깃했다. 조금만 씹어도 입안에서 옥수수향과 단맛이 확 퍼졌다. 절로 미소가 나왔다. 최 대표에게 "한국에서 팔아도 인기 있겠다"고 하니, "남한 사람 입맛에 맞춰 설탕을 넣어서 그렇다"고 답했다. 북한에선 설탕이 모자라 반죽에 소금을 살짝 넣는다. 그러면 옥수수의 단맛이 더 잘 느껴진다고 한다.

최 대표는 "북한의 음식 문화는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년대를 전후해 완전히 바뀌었다"며 "물자가 모자라 배를 곯는 와중에서도 영양을 보충하고 조금이라도 맛있게 먹으려는 의지가 담긴 것이 지금 북한의 음식"이라고 말했다. 박람회 문의 02)6939-3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