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정당 총재 부인, 영국 록밴드, 데모꾼, 무당이 모두 반한 가게가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납청놋전'이다. 1986년 문을 연 가게는 이름난 방짜 유기(鍮器) 산지인 평안북도 정주군 납청(納淸)마을을 이름으로 삼았다.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배합한 놋쇠를 불에 달군 뒤 두들기고 펴서 만든 그릇과 악기다. 금형에 놋쇳물을 부어 굳히는 주물 유기보다 손이 많이 간다.

납청놋전은 인사동 골목길 한가운데에 있다. 10평(33㎡)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황금빛 천지가 펼쳐진다. 좁고 긴 매장 가운데에 방짜 유기 그릇이 전시돼 있고, 벽에는 방짜 징과 꽹과리가 빼곡하게 걸려 있다. 가게는 이형만(57) 사장이 아내와 함께 운영한다. 20여 년간 대기업을 다니던 이 사장은 방짜 유기 기능 보유자인 아버지 이봉주(92·중요무형문화재 77호) 선생의 가게를 물려받았다. 이씨의 형인 이형근(60)씨도 방짜유기장이다. 가게에서 파는 제품의 90%는 이씨의 아버지와 형이 두드려 만든 것이다.

서울 인사동 ‘납청놋전’에서 이형만 사장이 얼굴만 한 방짜 꽹과리를 들고 웃고 있다. 방짜 유기 장인인 이씨의 아버지와 형이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납청놋전이 만드는 방짜 유기는 귀한 몸이다. 2002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 만찬에서 이 가게 식기를 사용했다. 이 사장은 "부시 대통령이 방짜 유기 식기가 아름답다며 감탄했다고 전해 들었다"며 "사용한 방짜 유기 반상기 세트를 청와대로부터 선물로 받아 미국으로 가져갔다"고 말했다. 2003년 방영한 인기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그릇과 수저도 대부분 이곳에서 대여했다. 이 사장은 "주변에선 드라마 간접광고(PPL)인 줄 알고 방송국에 얼마를 줬느냐고 묻는데 실제로는 1000만원을 받고 빌려줬다"고 했다.

가게 초창기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부인이 유일한 큰손이었다. 1987~1989년 3년간 놋수저 1000 세트를 선물용으로 사갔다. 이후엔 불교 단체나 절에서 종교의식 행사용으로 값비싼 좌종을 주로 구매해 갔다. 1990년대에는 집회와 시위가 늘어나 '데모꾼'들이 유기로 만든 꽹과리를 많이 찾게 됐다. 한 달에 꽹과리만 1500개씩 팔기도 했다. 2000년대 중·후반 들어서 방짜 유기가 살균 작용을 하고, 독물이 묻으면 변색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놋그릇 열풍이 불었다. 이때부터 가게 살림이 피고 납품처가 늘었다. 한때는 한 해 매출액이 120억원에 달했다.

방짜 유기의 매력은 외국인 고객에게도 통한다. 지난해 12월 미국 시애틀대학 교수 이만 마즈드가 이 가게에 왔다가 500만원짜리 대형 징이 맘에 든다면서 그 자리에서 결제했다.

드라마 ‘대장금’에 나온 납청놋전의 방짜 유기.

단골손님 중에는 '소리'를 안다는 음악인이 많다. 울림이 청명하고 깊어 음악인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명기(名器)로 통한다. 사물놀이 원조격인 김덕수 사물놀이패는 납청놋전의 꽹과리나 징을 10여 년째 구매하는 오랜 단골이다. 세계적인 드럼 심벌 생산업체 '질지언'의 사장단이 1982년 이봉주 선생이 운영하는 공장을 찾아와 방짜 징과 꽹과리 제작 방식을 견학하기도 했다. 당시 이 회사 경영진은 방짜 징소리를 듣고 "마법 같은 소리"라며 감탄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납청놋전에 깡마른 영국 남성 5명이 와서는 주물 좌종을 크기별로 20개를 샀다. 판매원이 왜 이렇게 많이 사가느냐고 물어보니 "우리는 영국의 록밴드 그룹인데 연주할 때 보조 악기로 쓰려 한다"고 했다고 한다. 강서구 염창동의 한 유명한 무당도 "굿할 때 이만한 소리를 내는 꽹과리가 없다"며 가게를 찾는다. 이씨는 "납청놋전은 아버지의 장인 정신이 담긴 걸작품"이라며 "이 가게에 남은 인생을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